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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루클린 시너 Mar 17. 2022

권력자에게 무례한 질문은 없다.
게으른 질문만 있을 뿐

외람되거나 근자감이 넘치거나 


최근 화제라기보단 논란이 된 모습이 있다.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가 질문하면서 했던 표현 때문이다.

“정말 외람되오나…”로 시작하는 질문을, 그 기자는 말 그대로 조심스럽게 던졌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대장동 특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냔, 딱히 외람돼 보이지 않는 내용의 질문을 하면서도 왜 기자는 외람된다고 생각했는지 궁금했다. 애초 외람된 질문이란 게 있는지도 말이다. 그러자 예전 장면이 떠올랐다. 


“오늘 기자회견문 모두발언을 보면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통해서 성장을 지속시키겠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를 만들겠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여론이 굉장히 냉랭하다는 것, 또 대통령께서 알고 계실 것입니다. 현실 경제가 굉장히 얼어붙어 있습니다. 국민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합니다. 대통령께서 계속해서 이와 관련해서 “엄중하게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강조를 하고 계셨는데요. 그럼에도 대통령께서 현 정책에 대해서 기조를 바꾸시지 않고 변화를 갖지 않으시려는 그런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싶고요. 그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 근거는 무엇인지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 


지난 2019년 1월초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이날 행사에서 가장 화제가 된 질문이다. ‘자신감’(이를 다룬 기사들은 ‘근자감’으로 패러프레이즈했다)을 묻는 질문 하나로 이 기자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때는 웬만한 연예인도 힘들다는 포털 실검 상위권에 하루 넘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처럼 질문 척박 사회에서 질문 하나로 일약 전국적 유명세를 치른 그 기자는 이후 정치권에 투신했다. 자세히는 곧 여당이 될 야당에서 언론대응을 담당하고 있다. 

대통령 답변보다 기자의 질문이 더 주목받은 이례적인 사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당시 상황부터 되짚어봐야 한다. 집권 3년차 접어들던 2019년 초, 조국사태는 아직 벌어지지 않았고 그래서 내로남불 비판은 마이너 한 지적이었으며, 임대차3법이나 부동산 문제도 터지기 전이었다. 지지율은 낮아지는 추세였지만 여전히 “잘한다”가 “못한다”보다 많던 시절, 한마디로 문대통령 면전에서 저런 말을 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할 때였다. 


이 기자를 스타로 만든 건 권력자에게 자신있냐고 묻는 자신있는 태도때문이다. 

지지자들은 감히 대통령에게 무례한 표현을 쓸 수 있냐고 비판했지만, 권력자에게 무례한 질문이란 없다. 

짝발로 서거나 반말로 물은 게 아니라면 질문 태도의 예의범절을 따지는 건 난센스다. 그럼에도 ‘질문하는 기자’가 관심을 받은 건, 권력자는 감시가 아닌 존경의 대상이란 잘못된 기제가 깔린 걸로 볼 수밖에 없다.


권력자는 권력을 위임한 국민의 궁금증에 답할 의무가 있다. 

주권자는 물을 권리가 있고, 피위임자는 대답할 의무가 있다. 기자는 질문의 권력관계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짝발로 서거나 반말로 하는 게 아니라면, 근자감을 물어도 문제 될 게 없는거다.  

그렇다면 훌륭한 질문이었나? 글쎄다. 

한번쯤 들었을법한 말 ‘질문이 길면 일반적으로 좋은 질문이 아니다’란 경구를 떠올리며, 되묻고 싶다. 

“그렇게 준비안된 질문을 한 근자감은 무엇인가…”


“여론이 굉장히 냉랭하다” “국민들이 많이 힘들어 하고 있다”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하다” 같은 말은 전형적인 정치인의 용어다. 이건 상대의 정확한 대답을 듣기위한 질문이 아니다. 구체적 수치는 배제됐다. 모호성은 질문자의 주관을 뒷받침한다. 상대가 무슨 대답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물어본 행위 자체로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정치적 언설에 가깝다. 질문과 대답의 전도현상이다.  


근자감 질문이 비판받아야할 지점이 바로 여기다. 

감히 버릇없게 대통령한테 무례하게 질문하냔 태도 문제가 아니라 모호하고 두리뭉실한 질문한 걸 탓해야한다. 무례한 게 문제가 아니라 게으른 게 문제다. 정치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국민’ ‘여론’ 같은 단어가 51이냐 49냐를 판단하고, 커피우유랑 밀크커피 차이가 뭔지 따져야하는 기자 입에서 나온 건 직무유기다.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권력자의 등장. 취재거리는 넘치고 질문도 넘친다. 또한번 질문할 권리와 대답하지 않을 의무 사이의 보이지않는 투쟁이 벌어질텐데, 외람된 질문도 무례한 질문도 없다. 게으른 질문만 있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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