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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Feb 23. 2023

소소한 출근길의 단상

워킹맘으로 산 지 23년

출근길. 오늘도 여지없이 19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어제와 다름없이 엄마로 보이는 여자와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탄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부터 아이가 칭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힝힝힝힝 하며 잔뜩 찌푸린 얼굴로 찡찡대는 아이를 엄마는 한 손으로 들쳐 안는다. 그제서야 아이는 엄마 어깨에 기대어 안겨 칭얼대는 소리를 멈추고 눈을 감는다. 잠이 덜 깬 모양이다. 매일 아침마다 똑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나는 아이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안쓰러움이 느껴져 지하주차장으로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지그시 바라보게 된다. 아이야, 너도 참 많이 삶이 힘들고 고달프겠구나. 아침 일찌감치 출근하는 엄마 손에 붙들려 덜 깬 눈을 뜨고 억지로 옷에 입혀져서 집밖으로 나와야 했겠지. 한참 늦잠 자고 하고싶은 대로 놀아야 할 나이에 직장인처럼 똑같은 시간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으로 출근해야 하니 말이야.


  일하는 엄마는 차림새에서도 티가 난다. 한팔엔 아이를 들쳐업거나 아이의 손을 잡고 있고, 다른 한팔엔 외출용 가방을 메고 있다. 바쁜 아침에 아이 챙기랴 출근 준비하랴 제대로 된 정장을 차려입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편하면서도 격식에 어긋나지 않는 외출복을 갖춰 입는다. 딱 보면 일하는 엄마구나, 전업주부구나 알 수가 있다.


  나의 딸은 올해로 성인이 되어, 이제 나는 1차적인 부모의 역할에서는 조금 자유로워졌다. “올해부로 엄마는 자유부인이야.”라고 선언을 해버렸다. 지금은 좀 홀가분한 마음이지만 아이 한창 키울 때의 그 심정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대학을 졸업한 스물다섯부터 지금까지 이십년이 넘도록 일을 했으니 말이다. 늘 피로에 짓눌렸고, 삶이 고달팠다. 다행히 우리집은 남편의 출근이 나보다 조금 늦어 아침 아이의 유치원 등교는 남편이 맡아줬고, 오후엔 친정엄마의 손을 빌렸다. 육아 때문에 친정 근처로 이사를 했었다. 주변 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하나밖에 낳지 않았다. 내가 힘들었고, 또 엄마에게 두 번째 아이를 맡기기가 미안했다. 안쓰러운 워킹맘들 그리고 아가들. 살려고 발버둥 치는 그 마음. 짠하다. 그래도 그렇게 버티다 보니 세월은 가더라.

 

  행복이란 크기의 정도가 아니라 빈도의 차이라는 것을 느낀다.

어떤 행복이건 간에 행복한 순간은 잠시이고 곧 사라져 버린다. 우리는 망각의 동물이라 즐거웠던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 곧 잊어버린다. 인생에 아주 큰 행복이란 없다. 아무리 큰 행복도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행복해야 한다. 자주 행복하려면 작은 일에도 자주,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매 순간 기쁨으로 살 수가 있다. 어렵지만 노력해야 한다.  


  오늘도 출근해야 하는 현실. 지금은 겨울방학이고 교사들도 방학엔 출근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방학이 있는 교사가 많이 부러웠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일 년에 서너 달의 휴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한두 달 쉬고나면 다시 재충전이 만땅으로 되어 힘차게 일할 수 있는 기운을 얻을 것만 같았다. 더불어 매일 출근해야 하는 나의 처지가 참 불만이었는데 이제는 감사하다 생각한다. 방학은 나에게도 학생들, 교사들 없이 편하게 여유를 갖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이다. 커피 한잔도 조금 더 여유롭게 마실 수 있다. 매일아침 일어나 출근해야 하므로 늘어지지 않을 수 있고 언제나 긴장된 상태로 나를 정돈할 수 있다. 내 자리가 있다는 것은 감사하고도 즐거운 일이다.


  인생은 별 거 아니라는 것. 그 진리를 깨닫고 나면 내 삶에 더 충실해질 수 있다. 별 거 아니라고 대충 막 살자는 게 아니라, 별 거 아니니까, 뭐 특별한 건 없으니까 내가 하고싶은 거 좀 더 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가 내 맘에 귀 기울여 보고, 작은 내 욕구를 충족시켜 작고도 확실한 행복을 찾고. 조금 더 그렇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느낄 때 더없는 행복의 충만함에 빠진다. 오늘은 점심시간에 잠깐 틈을 내어 붓이며 물감이며 미술도구를 사러 잠시 다녀왔다. 캔버스도 샀다. 혼자 그림을 그려보리라. 정말 별 거 아닌데, 이렇게 조금씩 내가 하고싶은 걸 하고 있다는 게 참 흥분된다. 오늘은 이 행복감에 잠시 빠져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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