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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무비 May 02. 2021

너를 기다리는 시간, 영화<비와 당신의 이야기>

지금 기다리는 사람이 있나요?


당신의 기다림은 어떤가요?





꿈도 목표도 없는 삼수생 ‘영호’(강하늘)는 매일 같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던 중 문득 초등학교 친구 ‘소연’이 떠오른다. 영호는 소연에게 무작정 연락을 하기로 결심한다. 영호가 보낸 편지는 소연이 아닌 동생 ‘소희’(천우희)에게 도착하게 되고, 아픈 언니 대신 영호에게 답장을 쓴 소희는 몇 가지 규칙을 지켜달라고 말한다. ‘질문하지 않기, 만나자고 하지 않기 그리고 찾아오지 않기’ 우연히 편지를 이어나가게 된 영호는 소연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지게 되고 소연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 영호에게 ‘12월 31일 비가 온다면 만나자’라고 하는 소희. 둘은 만날 수 있을까?





아날로그 감성이 주는 색감


영화를 본 후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영화‘러브레터’였다. 러브레터의 스토리와 그 감성까지 닮아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영화의 전체적인 색감, 분위기, 음악 등 연출에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고 요즘은 잘 쓰지 않는 ‘편지’가 소통의 매개체로 쓰인 것도 좋았다. 공간적인 측면에서도 책방, 공방 같은 아늑함을 주는 공간의 색감들이 편안하게 영화를 보게 만든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우연’과 ‘기적’에 맡기는 스토리가 억지스러운 개연성을 만든다는 것.


나는 아직도 편지가 좋다. 그 느린 기다림이 좋다. 느린 만큼 감동도 점점 쌓여 더 커다랗게 오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편지를 매개체로 썼던 것일까. 아날로그 감성이 주는 색감은 느리지만 크게 다가온다.



좋고 싫고의 기준은 종이 한 장 차이



“맑은 날이라고 좋은 날이 아니고, 비 오는 날이라고 나쁜 날이 아니야.”


영화 속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대사였다. 좋은 날, 나쁜 날의 기준은 날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분에 달려있다. (실제로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단지 놀러 가는 날은 맑았으면 하는 마음이 조금 더 드는 것뿐이다.


감독님의 인터뷰를 보면 이 영화를 기획할 당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지내고 있는가?’라는 고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배우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을 했다. 지나고 보면 이것도 다 추억이라는 말을 시간이 지나면서 몸소 느끼고 있다. 과거의 내가 모여 지금의 내가 됐듯이 지금의 내가 모여 미래의 내가 된다.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는 생각하는 사람만이 바꿀 수 있다.





내 우산은 어떻게 생겼을까


영화 속 캐릭터들을 보면 영호와 소희는 서로의 편지를 통해 점점 성장해나간다. 별다른 꿈이나 목표가 없이 남들이 대학에 가니까 자신도 공부하고 있던 영호는 자신의 꿈을 찾게 된다. 그런 재수학원에서 만난 '수진'(강소라)이라는 캐릭터는 참 매력적이다. 영화 속에서 영호는 한 번도 수진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 모습이 왠지 애잔하게도 애틋하게도 느껴진다. 다시 만난 수진에게 영호는 우산을 선물해준다. 바깥쪽이 아닌 안쪽에 오로라가 그려져 있는 우산. 아마 그건 영호가 수진에게  줄 수 있는 소중한 추억에 대한 보답이겠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든 우산을 선물해주는 영호를 보며 영호의 우산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많은 사람이 그러듯 정작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잘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영호의 우산이 투명한 비닐우산이라고 상상하기로 했다. 길거리에서 흔하게 살 수 있는 그런 투명한 우산. 왠지 순수한 모습의 영호와 닮아있는 것 같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영화 속에서 ‘기다림’이란 키워드를 계속 가지고 가는데 나는 기다림이란 단어를 들으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인데, 왠지 이 영화와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기다림의 시간을 표현한 느낌이 닮아있다.


흔한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잔잔한 감성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나쁘지 않았던 영화였던 것 같다. 누군가를 기다려 본 사람만이 기다림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영호가 기다린 시간들이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한줄평 : 흔해서 좋았고 흔해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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