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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래빗 Apr 19. 2023

산책길에서의 사색과 고찰 - 짧은 머리와 날파리

나의 퇴사일기, D+76

오늘은 오래간만에 큰 맘 먹고 머리를 잘랐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머리가 무척이나 어색하다.


자른 머리가 가볍고 맘에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때마침 미세먼지도 없고 따뜻한 날씨라 작은 가방을 챙겨 집 근처 천을 따라 산책에 나섰다. 산책은 사색을 하기에 참 좋은 시간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이어졌다.



[짧은 머리]


어렸을 때 항상 했던 생각이 있다.


‘어른들은 왜 머리가 다 짧고 스타일이 비슷할까?’


이에 대한 답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귀찮아져서’ 이다.


일 혹은 육아를 하면서 치렁치렁 긴 머리는 예쁜 것이 아닌 그저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린다. 아이돌들의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보면서 항상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갖기에는 덜컥 겁이 난다. 나이가 들며 긴 머리는 내 양 옆 시야를 가리는, 혹은 아이가 있다면 내 아이가 잡아당기는 장난감쯤으로 전락해버린다. 이쯤 되면 긴 머리는 효용 가치가 없다. 짧은 머리를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놀랍게도(?) 내 머리는 근 몇 년간 긴 생머리였다. 무거운 머리가 꽤나 거슬려 몇 번이나 자르고 싶었지만 자르지 않았던 이유는 시간이 아까워서였다. 머리를 짧게 자르면 펌도 같이 해야 하는데 이게 정말 긴 고난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평일에는 회사일과 사람들과의 관계로 넉다운 되는 탓에 주말에 머리를 해야 했지만 그마저도 이 머리카락 따위에 내 소중한 주말을 내어줄 수 없다는 어떠한 신념 때문이었다.


퇴사를 한 지금에서야 이 머리를 정리할 용기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때마침 주말에 있을 친구 결혼식이 머리를 자르고 싶은 내 욕구에 불을 지폈다. 그래서 오늘 시원하게 머리를 잘랐다. 드디어 귀찮은 존재로부터 해방되었다. 자르고 나니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워졌다.



[날파리]


‘왱왱…’


산책을 하는데 오늘따라 날파리가 정말 많이 보였다. 내가 걷는 산책로는 길 양 옆으로 풀과 나무가 많은 곳이라 날씨가 따뜻해지면 항상 온갖 벌레들이 기승한다. 산책로를 따라 쭉 날파리들이 군락을 형성하고 있어 숨쉬면 코로 날파리들이 들어올 것만 같아 팔로 휘적휘적 이들을 쫓아내지만 역부족이다.


이렇게 많은 벌레들도 희한하게도 겨울이 되면 자취를 감춘다. 다들 겨울 추위와 숨바꼭질이라도 하는지 꼭꼭 숨어 날개 한쪽도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에 숨어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문득 이것이 인간 관계와도 닮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잘 나가거나 좋은 상황일 때는 따뜻한 기운에 날파리가 꼬이 듯이 인간들이 꼬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내 옆에 있지만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도 내 옆으로 온다. 반대로 내가 힘들거나 안 좋은 상황일 때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난다. 최악의 경우에는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겨울의 날파리들처럼 어디로 숨어버린 건지 아무도 없다.


적어도 나는 남들에게 ‘겨울에도 날아다니는 벌레’가 되어주려고 노력해야겠다. 힘든 상황에서도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가족, 친구, 동료가 되어보자고 산책을 하며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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