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지원 May 27. 2023

순간을 소중히

타이타닉

순간을 소중히 : 소소인문 온라인 글쓰기 <영화에서 건져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9기



중학교에 다닐 때가 생각난다. 교장선생님 훈화 시간이었던가? 자족(自足)에 대해 말씀하셨다. 자족은 자기 분수에 만족하는 것, 또는 스스로 넉넉함을 느낌, 필요한 물건을 자기 스스로 충족시킴,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교장 선생님은 분수에 만족하는 삶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하셨는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불편감이 올라왔다. 지금도 그때 그 기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인상적이었던가 보다. '사람이 지금 상태에 만족하면 어떻게 발전하고 더 나아지겠어? 아주 게으른 소리 하고 앉아있고만' 이런 종류의 속마음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자족에 대해 말씀하신 교장선생님은 당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깨닫게 된 삶의 정수 혹은 지혜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10대 소년들에게는 '야망을 가져라'라고 말하면서 한참 열정을 퍼부으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에너지를 가진 소녀들에게 '자족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편하다. 향상심과 자족의 균형을 잘 잡으며 나아가려는 나의 눈으로 볼 때 여전히 불편하다.

'자족'은 스스로 깨닫는 삶의 지혜다. 누군가가 그러라고 해서 생기는 마음도 아니다. ​교장선생님은 아마 50대 중후반이셨을 텐데 인생을 살아보니 그렇더라는 마음이 지금은 이해가 된다. 자족하라는 말이 곧 지금 수준에 머무르라거나 게을러도 된다는 의미가 아닌데 그때는 환경미화 사건과 연결되어 교장선생님이 곱게 보이지 않았었다. ​1994~1996년이 아주 무서운 시대는 아니었지만 아주 자유가 보장된 시대도 아니었던가 보다. 환경미화를 위해 반 게시판에 '3김 정치'에 대한 내용을 스크랩하여 붙여놨었는데 교장실로 불려 가 엄청 혼났다. 아마 내 성적이 상위권이 아니고 임원이 아니었다면 한 대 맞았을지도.


아마도 우리 담임선생님이 58년 개띠 88학번 전교조인 사회 선생님이라서 교장선생님의 눈 밖에 났을 것이고 우리 반이 주의 대상이었겠지. ​교사가 도를 옮기는 것은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힘들다고 들었는데  당시 경기도에 사셨던 담임선생님이 충남으로 출퇴근하신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인 듯하다. 높으신 분들에게 찍혀서 그랬을 거라고 추측한다.


전교조 88학번 선생님들은 참 재밌었다. 서로의 우정도 좋아 보였다. ​그분들이야말로 '순간을 소중히' 하고 계셨던 게 아닐까? 과거는 암울했고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그리고 지금 상황도 뾰족뾰족 가시밭길이지만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나의 시대 개념과 시야는 그때 생겼다고 확신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 임정숙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다. ​'순간을 소중히'에 대한 글을 이렇게 쓸 계획은 아니었는데 의식의 흐름대로 여기까지 왔다. 그때 선생님들의 '순간을 소중히'가 떠올랐을 뿐이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현재에 감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지금 나에게 '순간을 소중히'다. 지금을 살고 있으나 나의 의식은 자주 과거 아니면 미래에 머무르며 슬퍼하고 분노하고 불안해한다. 에너지를 들여서 의식을 현재로 계속 끌어오는 노력을 해야지 '지금, 여기'에 온전히 있을 수 있다.

인간은 참 약하고 그래서 또 악한 존재다. 내가 그렇다. 죽음이 정해져 있는 유한한 삶을 살기에 때때로 죽음의 공포를 만난다. 나는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그래도 같은 결정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선택의 순간 결정을 내리는데 남편은 여기에 하나를 더했다. 어떤 선택은 후회와 슬픔이 따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을 잘 세울 것. 우선순위를 잘 생각할 것. ​결국 돌고 돌아 '순간을 소중히'는 일상을 잘 세우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https://m.blog.naver.com/dove7522/223066247320


매거진의 이전글 질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