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순간을 소중히 : 소소인문 온라인 글쓰기 <영화에서 건져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9기
중학교에 다닐 때가 생각난다. 교장선생님 훈화 시간이었던가? 자족(自足)에 대해 말씀하셨다. 자족은 자기 분수에 만족하는 것, 또는 스스로 넉넉함을 느낌, 필요한 물건을 자기 스스로 충족시킴,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교장 선생님은 분수에 만족하는 삶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하셨는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불편감이 올라왔다. 지금도 그때 그 기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인상적이었던가 보다. '사람이 지금 상태에 만족하면 어떻게 발전하고 더 나아지겠어? 아주 게으른 소리 하고 앉아있고만' 이런 종류의 속마음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자족에 대해 말씀하신 교장선생님은 당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깨닫게 된 삶의 정수 혹은 지혜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10대 소년들에게는 '야망을 가져라'라고 말하면서 한참 열정을 퍼부으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에너지를 가진 소녀들에게 '자족하라'라고 말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편하다. 향상심과 자족의 균형을 잘 잡으며 나아가려는 나의 눈으로 볼 때 여전히 불편하다.
'자족'은 스스로 깨닫는 삶의 지혜다. 누군가가 그러라고 해서 생기는 마음도 아니다. 교장선생님은 아마 50대 중후반이셨을 텐데 인생을 살아보니 그렇더라는 마음이 지금은 이해가 된다. 자족하라는 말이 곧 지금 수준에 머무르라거나 게을러도 된다는 의미가 아닌데 그때는 환경미화 사건과 연결되어 교장선생님이 곱게 보이지 않았었다. 1994~1996년이 아주 무서운 시대는 아니었지만 아주 자유가 보장된 시대도 아니었던가 보다. 환경미화를 위해 반 게시판에 '3김 정치'에 대한 내용을 스크랩하여 붙여놨었는데 교장실로 불려 가 엄청 혼났다. 아마 내 성적이 상위권이 아니고 임원이 아니었다면 한 대 맞았을지도.
아마도 우리 담임선생님이 58년 개띠 88학번 전교조인 사회 선생님이라서 교장선생님의 눈 밖에 났을 것이고 우리 반이 주의 대상이었겠지. 교사가 도를 옮기는 것은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힘들다고 들었는데 당시 경기도에 사셨던 담임선생님이 충남으로 출퇴근하신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인 듯하다. 높으신 분들에게 찍혀서 그랬을 거라고 추측한다.
전교조 88학번 선생님들은 참 재밌었다. 서로의 우정도 좋아 보였다. 그분들이야말로 '순간을 소중히' 하고 계셨던 게 아닐까? 과거는 암울했고 미래가 불확실하지만, 그리고 지금 상황도 뾰족뾰족 가시밭길이지만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나의 시대 개념과 시야는 그때 생겼다고 확신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열리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 임정숙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다. '순간을 소중히'에 대한 글을 이렇게 쓸 계획은 아니었는데 의식의 흐름대로 여기까지 왔다. 그때 선생님들의 '순간을 소중히'가 떠올랐을 뿐이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현재에 감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지금 나에게 '순간을 소중히'다. 지금을 살고 있으나 나의 의식은 자주 과거 아니면 미래에 머무르며 슬퍼하고 분노하고 불안해한다. 에너지를 들여서 의식을 현재로 계속 끌어오는 노력을 해야지 '지금, 여기'에 온전히 있을 수 있다.
인간은 참 약하고 그래서 또 악한 존재다. 내가 그렇다. 죽음이 정해져 있는 유한한 삶을 살기에 때때로 죽음의 공포를 만난다. 나는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그래도 같은 결정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선택의 순간 결정을 내리는데 남편은 여기에 하나를 더했다. 어떤 선택은 후회와 슬픔이 따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을 잘 세울 것. 우선순위를 잘 생각할 것. 결국 돌고 돌아 '순간을 소중히'는 일상을 잘 세우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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