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진짜 친구 : 소소인문 온라인 글쓰기 모임 <하루 10분, 영화에서 건져 올린 질문으로 글쓰기>
친구라는 말을 너무 남발했었다. 내가 친구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같은 반 아이들을 친구라고 칭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들이 모두 나의 친구는 아니었다. 같은 반이었을 뿐. 대학교 때도 마찬가지. 같은 목표로 같은 과에서 같이 공부하는 동기이지 친구는 아니었다.
'친구는 아니었다'라고 말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틀이 있다는 의미다. 지금 나의 친구들을 생각해 보면,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물리적 거리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상대를 믿는가?
호감을 느끼나?
함께 있으면 편안한가?
만나고 헤어져 오는 길에 마음이 어떤가?
이 질문들에 'yes'라고 한다면 나의 친구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친구이기를 원한다면 이 질문에 'yes'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생각하는, 상대가 원하는 '친구'의 의미가 나와 완전히 같지는 않을 수 있지만 이 질문의 범주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프레디 머큐리라는 인물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무대에서 환호를 받다가 공연이 끝난 적막함을 힘들어하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공허했을지 알 것 같다. 삶에 거품이 많을수록 요란할수록 진짜가 아닌 것들이 주위에 쌓인다. 때로는 스스로 원해서일 때도 있고 주위에서 그렇게 조성해 가는 때도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답을 찾으면 삶이 단순해진다. 어떤 순간에도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듣는다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머큐리가 파티를 열고 시끌벅적하게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그의 진짜 친구들은 그곳에서 오래 있는 것을 힘들어하고 떠난다. 프레디는 단지 외로웠고 표면적인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그저 혼자 있지 않는, 시끌벅적한 시간과 환경을 만들었을 뿐이다.
'진짜 친구'는 우선 자신이어야 한다. 홀로 있는 그 적막하고 고요한 시간에 자신과 시간을 보내며 내면을 돌아보고 부유하는 감정과 생각들을 바라보며 스스로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 그런 후에야 타인을 친구로 받아들이고 나도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다. '따로 또 같이'가 되는 사이라야 건강하다.
https://m.blog.naver.com/dove7522/223066247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