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칸토 : 마법의 세계
‘기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는 병원이다.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성탄절 기념사진을 찍은 만 세 살의 나, 그리고 내 뒤에 서 있는 엄마의 모습. 환자복을 입은 나는 해맑고 보호자인 엄마는 초췌하다. 엄마가 더 아픈 사람 같다. 만 세 살의 나는 수술로 치지도 않는다는 급성충수염(맹장) 수술을 받았다.
많은 경우 흉터가 1cm의 선 형태로 아주 작다. 나의 경우는 1cm의 선 형태 흉터 옆에 손바닥 크기와 너비 정도 되는 흉터가 하나 더 있다. 성인인 지금도 작지 않은데 만 세 살의 아이 몸에는 복부의 반만 한 크기다. 첫 수술 후 염증이 번져 복막염이 진행되어 응급으로 실려가 세 번의 개복 수술을 했다. 성인도 그렇지만 만 세 살 아이가 단 기간에 세 번의 전신마취 수술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취가 깨어나지 않아 위험한 경우도 많고.
나는 몰랐지만 어려운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고 한다. 부모님은 옆에서 그걸 다 지켜보셔야 했고. 갓 돌 지난 동생은 친척 집에 맡겨졌고 부모님은 집과 병원을 오가며 고군분투하셨다.
사람의 일생에 몇 번의 기적이 찾아올까? 수술 후 마취가 풀리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니 나의 이 삶은 살아있는 것 그 자체로 기적이다. 다양한 종류의 실패를 겪고 힘듦을 지나왔지만 죽음보다 더한 것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도 버틸 수 있다. 쉽다는 뜻이 아니다. 정신줄을 놓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전날 밤에 '내일 아침에도 살아있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하고 자면 아침에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깬다. 문뜩 몰려오는 죽음. 소중한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보낸 경험이 있다면 일상 중에 죽음을 의식하게 된다. 외할머니와 막내 외삼촌을 황망하게 떠나보내고 나는 종종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에 잠식되지만 않는다면 살아있음만으로 감사하며 기적 같은 생을 살 수 있다.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느껴지는 삶이 예외로 있을 수 있다. 모든 인생을 재단할 수 없다. 나의 글에서 전제는 '나에 한하여'다.
기적 같은 오늘 무엇을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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