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너거들, 돼지 와 키우는지 아나?”
“잡아 물라꼬 키우는 거 아입니까.”
“잘 아네. 돼지는 잡아 물라꼬 키우는기다. 그라만 군인은 와 멕여주고 재워주고 하는데?”
“그거야 나라 지키라꼬 그라는 거 아입니까?”
“임마 전쟁 때 써물라꼬 그러는 기다. 너거들은 인간이 아이고 전쟁 때 써 물 총알받이에 불과한 기다. 너거들은 돼지 같이 나라에서 잡아물라꼬 키우는 기란 말이다. 그저 시키만 시키는 대로 하고 주만 주는 대로 무라.”
점심을 금방 먹고 PX로 달려가 빵을 사 먹고 있는데 예의 그 기간병이 갑자기 들어와 PX 문을 닫아걸었다.
“야 이 새끼들아, 그래 배가 고프나? 밥 금방 처묵고 또 빵까지 사묵는 너거들은 돼지하고 뭐가 다르노?”
입에 빵을 가득 문 채로 뺨을 그 기간병에게 맡기면서도 아픔보다는 모멸감과 비참함에 온몸을 떨어야 했다. 훈련이 힘들고 고달파도 그것 때문에 자존감을 잃을 일은 없었다.
훈련소에서는 오직 먹는 이야기밖에 몰랐다. 피 끓는 청춘들이 여자 이야기조차도 아예 뒷전이었다. 이틀에 한 번씩 화랑 담배 한 갑씩 주었는데 담배를 피우지 않는 병사들에게는 별사탕 한 봉지씩을 주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서 별사탕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기 시작했다. 몇몇 소대에서는 별사탕을 제대로 주지 않고 선임분대장이 일부 착복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별사탕을 타 먹는 녀석들이 찾아와 별사탕이 두 사람에 한 봉지씩이 맞느냐고 물어왔다. 대답하기 참 난감했다.
선임분대장이면 나름 배웠다는 놈들인데 먹는 거에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별사탕 반 봉지에 인격을 걸고 명예를 거는구나. 떼어먹는 놈이나 그걸 떼이었다고 불만하는 놈이나 참담하기만 했다.
전반기 훈련을 마치고 하늘만 빼꼼히 보이는 산속에서 4주간의 교육을 더 받아야 했다. 추위와 기합, 훈련에 시달렸지만 정작 힘든 건 배고픔이었다. 둥근 알루미늄 식기에 밥과 국을 따로 담고 반찬으로 김치를 밥 위에 얹어주었다. 밥을 조금이라도 더 타 먹기 위해 배식 전에 식기 바닥을 돌로 바깥으로 쳐내 배식구로 들이미는 녀석들이 있었다. 배식 병사는 그런 녀석들을 아래위로 쓱 훑으며 씩 웃으며 식기를 바닥에 툭툭 쳐 안으로 움푹하게 들어가게 하고는 밥을 퍼 주었다. 그래도 녀석들은 끼니때마다 그 짓을 멈추지 않았다. 밥을 푸면서 밥주걱으로 밥을 깎아내릴 때는 칼날이 살을 에는 것보다 더 아프다는 녀석들도 있었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매서운 날씨에도 국 한 그릇을 더 타기 위해 물 푸는 취사장 사역 지원병은 줄을 섰다.
하루가 멀다 하고 눈이 내렸다. 신병 교육대 인근 도로와 연병장에 눈이 쌓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눈이 내리는 동안은 도로와 연병장은 자다가도 뛰어나가 눈을 쓸어야 했다. 누가 눈이 아름답다고, 기다려진다고 했던가!
펑펑 쏟아지는 눈을 쓸면서 이게 쌀가루나 밀가루면 정말 좋겠다는 녀석들은 있었지만 잠깐잠깐 휴식시간에 눈에 얽힌 애인과의 추억담이나 첫눈의 설렘을 말하는 녀석은 한 명도 없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웃통을 훌러덩 벗고 훈련을 받아야 했다. 키 가까이 파진 호 안에 들어가 서로를 호 밖으로 밀어내는 훈련이었다. 온몸은 진흙으로 범벅이 되었다. 계속되는 호 안에 수류탄, 호 밖에 수류탄. 호 안에 수류탄 하면 호 밖으로 뛰쳐나가야 했고 호밖에 수류탄 하면 다시 호 안으로 뛰어 들어가야 했다. 호 안팎은 눈과 흙이 뒤범벅이 되어 진흙탕이 되었다.
10분간 휴식시간에는 다 함께 노래를 불러야 했다. 눈물을 쥐어짜는 노래만 골라 시켰다. 고향의 봄으로 시작한 노래가 오빠 생각, 어머님 은혜에 이르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다.
점호 시간이 되면 가끔 기간병 사수가 일을 빙자해 불러냈다. 힘든 점호를 받지 말라는 배려였다. 딱히 할 일이 없어 하릴없이 난롯가에 앉아 있노라니 PX를 가도 좋다면서 누구한테 걸리지만 말라고 했다. PX 출입은 훈련병에게는 엄격히 금지된 행위였지만 모두가 점호를 받고 있을 때였기에 들킬 염려는 없었다.
몇 가지 빵과 과자를 사서 주머니에 넣고 점호가 끝날 때쯤 내무반으로 들어가 바로 옆 자리의 친한 두 녀석에게 자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모두가 잠들었을 무렵 모포를 뒤집어쓰고 빵과 과자를 나눠 먹는데 아무리 조심해도 과자 봉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피할 수 없었다. 불침번을 서던 녀석이 다가왔다.
“야 너거들 뭐 묵노? 나도 좀 도.”
“먹긴 뭘 먹는다카노. 아무 꺼도 안 먹는다.”
“야 카지 말고 그거 쫌 팔아라. 돈 주께”
“없다. 다 먹었다.”
그 이후로 녀석을 볼 때면 그 모습부터 떠올랐다. 녀석도 날 보면 그 모습부터 떠올리겠지. 미안하고 창피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그 미안감과 부끄러움은 한참이 지나 자대에서 만났을 때였다. 교육기간 중에는 미안하지도 부끄럽지도 창피하지도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일요일 점심은 건빵으로 때워야 했다. 그것도 훈련이라는 것이었다. 건빵을 물에 말아 훌훌 마셔버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나이가 아주 많았던 훈련병동기가 있었다. 그는 금방 건빵을 다 마셔버리고는 아직 반도 먹지 못한 내게 늘 손을 내밀곤 했다. 호적이 잘못되어 서른 가까이 되어 입대한 훈련병이었다. 얄밉기 짝이 없었지만 사람좋은 웃음을 웃으며 피같은 건빵을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
후반기 훈련을 마치고 연대 본부 대기병 막사에서 마음 졸이며 앉아 있는데 기간병 한 명이 들어와 막사에 가득한 병사들을 휘이익 둘러보더니 나와 다른 한 명을 지목해 따라오라고 했다. 보안대였다. 그는 산같이 쌓인 너저분한 식기를 닦으라고 하고는 이내 어디로인지 사라졌다. 같이 간 녀석이 기간병이 나가기 무섭게 찬장을 뒤지더니 '야 오뎅이다' 낮게 외치고는 잽싸게 주머니에 어묵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나 보고도 몇 개 집어넣으라고 재촉을 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에도 ‘혼자만 쑤셔 넣지 말고 내 주머니에도 좀 넣어주면 안되나.’ 생각하고 있는데 녀석은 내 생각을 읽었는지 주머니 가득 어묵을 쑤셔 넣어 주었다. 주머니 속 어묵은 먹을 기회가 좀체 오지 않았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냇가에서 식기를 닦으면서 할 수 없이 다른 녀석들과 나누어 먹을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에게 나눠준 그 오뎅이 너무너무 아까웠다.
더플백을 짊어지고 높은 산을 넘어 인솔병을 따라서 대대본부로 갔다. 철책에 투입되기 직전이라 병사들은 대부분 유격 훈련을 받으러 가고 대대는 거의 비어 있었다. 남은 병사 몇몇이 아침 점호를 받는데 차림새가 하나같이 거지였다. 군복은 누더기였고 통일화까지 여기저기 기운 자국이 선명했다. 며칠 후 부대로 귀대한 병사들 또한 모두가 거지꼴이었다. 심지어는 탄띠조차 기운 것을 허리에 찬 병사까지 있었다.
유격을 마치고 중대원들이 복귀를 한 다음 날 아침 점호 시간에 난리가 났다. 전 대대원이 연병장에 모여 점호가 끝난 후 영문도 모른 채 온갖 기합에 시달려야 했다. 한참을 혼을 빼놓던 주번 사령이 장교 식당의 식기가 다 없어졌다면서 훔친 놈이 나올 때까지 점호를 끝내지 않겠다고 했다. 다른 것도 아닌 장교 식당의 식기를 훔친 간 큰 놈이 그걸 훔쳤다고 제 발로 걸어 나오겠는가? 오자 말자 더럽게 재수가 없다고 속으로 툴툴거리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기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식기는 끝내 찾지 못했다.
중대장 전령이 장교 숙소에 가서 중대장 밥을 타오라고 했다. 보리쌀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하얀 쌀밥이었다. 식기에 담긴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하얀 쌀밥이 몇 알만 먹어보라고 끝없이 유혹을 했다. 군침을 삼키며 몇 번이나 하얀 쌀밥으로 손이 가곤 했지만 알량한 자존심이 그걸 막았다. 새하얀 쌀밥은 어떤 맛일까 궁금증은 오래도록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희디 흰 쌀밥을 한 알도 입안에 넣지 못한 아쉬움이 오래오래 남았다.
철책에 들어가서는 소대별로 막사가 멀리 떨어져 있어 취사는 별도로 했다. 우리 행정반은 인원이 적어 대대 취사장까지 가서 밥과 국을 타 와서 배식을 해야 했다. 그 몫은 당연히 맨 졸병인 내 차지였다. 밥과 국, 김치를 버킷에 타 와서 배식을 하면서 고참들 밥은 살살 퍼서 조금씩 담고 내 것은 꾹꾹 눌러 많이 담았다. 그래도 고참들은 밥을 남겨 내게 주었다.
어느 날 고참들이 두릅이란 걸 따와서는 같이 먹자고 했다. 특식으로 나오는 고추장에 찍어 먹는 두릅 맛은 환상이었다. 그때부터 두릅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제대하고 먹은 두릅은 세상에 어찌 그리 맛이 없었을까?
한참 자고 있는데 한 고참이 마구 흔들어 깨웠다. 몇몇 고참이 소주병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생각해서 너만 깨운 거야 임마, 마셔.”
술은 철책에서는 엄격히 금지된 것이었고 당연히 살 수도 없었다. 고참 한 사람이 위험을 무릅쓰고 민통선 안에 있는 마을까지 내려가 사 온 것이라고 했다.
졸병은 술보다는 자는 것이 훨씬 좋았다. 그렇지만 내색을 할 수는 없어서 그저 감사히 마시고 또 마셔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