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현석 Sep 04. 2022

우리 마을 숲 속 둘레길

갑자기 아침 공기가 서늘해졌다. 아직 9월 초인데 벌써 가을이 온 건가?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싶어 아침을 간단히 먹고 아내를 채근해 뒷산 정발산으로 향한다. 울창한 수목으로 가득 찬 정발산은 오늘따라 더욱 싱그럽다. 

얼마 전 만들어진 둘레길을 걷기로 한다. 해가 들지 않아 공기가 더욱 서늘한 숲길을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코로나가 두렵지 않은가 보다. 대부분 마스크를 벗어던진 채 걷는 데 열중하고 있다. 하긴 맑은 공기를 한껏 마시기 위해서라도 마스크는 벗어던지고 싶겠지.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중장년 여성들이 태반이다. 더운 여름 동안 집에만 갇혀 살림살이에 바빴을 테니 오죽 바깥공기가 그리웠겠는가. 혼자서 묵묵히 걷는 남자들과는 달리 여성들은 두세 명 또는 무리를 지어 왁자하게 떠들며 걷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못다 한 말들이 많았던 게지. 그런데 의외로 부부가 같이 걷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우리처럼 손을 잡고 걷는 커플 보기는 더욱 어렵다. 

둘레길을 조성하면서 길가에 심은 듯한 연약한 모습의 봉숭아들이 작은 꽃을 피우고 있다. 영양 부족 탓이겠지, 아니면 햇볕을 제대로 쬐지 못해서였든지. 그 모습이 안쓰러워 마음이 짠해진다. 씨라도 제대로 맺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정집 화단에 심어졌더라면 키도 크고 아주 탐스럽게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을 수 있었을 텐데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그 살아가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지난봄, 둘레길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는데 여름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부쩍 는 것 같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맨발이다. 처음 둘레길이 만들어졌을 때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이제는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맨발로 걷기에는 위험하지 않나 싶은 곳이 곳곳에 널려 있는데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허리가 구부러진 할머니가 맨발로 양손에 스틱을 짚고 우리를 추월해 간다. 등에는 작은 배낭까지 메고 있다. 산에는 이력이 난 할머니인가? 남의 눈치 같은 건 살필 필요가 무어겠는가 달관한 표정이다. 오래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가 가고 싶다는 생각일 거라고 나름 짐작하기로 한다. 

전방에서 군 생활을 할 때 맨발로 지내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처음 고참들이 하라는 대로 맨발로 돌아다니다가 돌부리에 차였을 때의 그 엄청난 아픔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도 맨발에 익숙해졌을 때의 편안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맨발의 편안함과 해방감을 알면서도 아직은 맨발로 걸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둘레길 흙바닥에 작은 돌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고 돌부리들도 곳곳에 박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의눈이 신경 쓰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침 햇살이 아주 따사롭다. 나무 그늘을 오히려 피해 햇볕이 잘 드는 곳을 부러 찾아 햇살을 쪼이기로 한다. 아주 따뜻하다. 암센터 뒤로 접어들자 드문드문 환자복을 입은 분들이 오솔길을 걷고 있다. 휠체어를 탄 분도 있다. 암센터 입원환자분들일 것이다. 환자복을 입은 건장한 분이 성큼성큼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퇴원을 앞둔 분일 테지. 그간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암이 재발하지 않고 건강하게 사시라고 마음으로 빌어본다. 쌍둥이 딸을 데리고 가는 아빠가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는 모습이 정겹다. 아빠로부터 사탕을 받아 들고 언제 울었느냐는 듯 방긋거리는 아기가 천진스럽다. 저 앞으로 아빠한테 안겨 가던 한 아기가 우리에게 예쁜 손을 흔든다. 환하게 웃으며 같이 손을 흔들어 준다.

정발산에 둘레길을 만든 것은 참 잘한 일이다. 크게 가파르지 않고 평이한 길이 계속되는 것이 좋고 가끔 만나는 오르막도 다리에 힘 붙이기 딱 좋을 정도라서 더 좋다. 무엇보다 전 구간이 나무가 울창한 길이어서 정말 좋다. 길이도 한 4Km 정도로 걷기 딱 좋은 거리다. 수년 전 한여름 더위 속에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을 때는 얼마나 힘들었던가. 둘레길을 완전히 한 바퀴 다 돈다고 미련스레 한 번에 서너 코스씩을 몇 달에 걸쳐 돌지 않았던가. 그런 무리를 하지 않고도 시원한 나무 그늘을 걸을 수 있는 이 둘레길이 정말 좋다. 더구나 집 바로 뒤에 있으니 언제든 갈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 어릴 적에는 운동을 위해 산을 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어른들은 소먹일 풀이나 땔나무를 베든가 산나물을 뜯기 위해서나 산에 올랐다. 아이들은 소 풀을 베거나 소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산에 가고, 이른 봄 칡뿌리를 캐고 진달래꽃이나 산딸기를 따기 위해 산을 찾았다. 한겨울 토끼몰이를 하기 위해 산을 타기도 했지만 운동을 하기 위해 산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배 꺼진다고 아이들 장난치는 것조차 말렸던 시절 아니었던가! 매일 빠지지 않고 학교 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학교까지 거리가 3Km쯤이었으니 하루 6Km는 걸어야 했다. 그뿐인가.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으로 달려 나갔고 집에 와서는 꼴을 베러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바빴으니 그 운동량이 얼마였겠는가. 그래서일 것이다. 이 나이까지 확실하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전화기에 설치된 만보계로 몇 보나 걸었는지 매일 체크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만 보를 넘기면 큰일을 해낸 듯 마음이 뻐근해진다. 의무감으로 하는 걷기가 건강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마는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생각하며 열심히 정발산을 오르고, 동네 골목골목을 걷는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동네 정발산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