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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Oct 18. 2022

맨발 걷기가 유행이다

군 시절 여름이면 맨발로 여름을 나곤 했다. 종일 통일화에 옥죄이던 발이 통일화에서 해방되면서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맨발 생활이 처음에는 발바닥이 상당히 아프고 혹 돌멩이를 걷어차기라도 하면 아파서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였지만 맨발 걷기는 오래지 않아 적응이 되었고 맨발은 더없이 편했다.


맨발 걷기의 효능을 얼마 전 한 신문에서 크게 보도를 했다. 말기 암 환자가 죽기 살기로 맨발로 2개월간 산길을 걸어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는 놀라운 기사였다. 


집 뒤 정발산에 지난봄 둘레길이 새로 생겨 적지 않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정발산 둘레길을 걸을 때면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을 간간이 볼 수 있었지만 무심하게 보아 넘겼다. 맨발로 걷던 군 생활이 생각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들을 따라서 맨발로 걷는다는 것은 왠지 좀 쑥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신문기사를 보면서 군 시절이 불현듯 떠올랐고 이참에 맨발로 걸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딸아이도 선선히 그래 보자고 했다. 집 뒤 정발산 둘레길을 찾으니 신문에 기사가 나서였을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맨발로 걷고 있었다. 쑥스럽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이후로 한 열흘 정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맨발로 둘레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발바닥이 아프고 돌을 걷어차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어 걷는데 신경이 많이 쓰였다. 여기저기 밤송이도 널브러져 있어 눈은 아무래도 땅바닥을 보면서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종아리가 많이 아팠다. 그러나 아픔을 무릅쓰고 며칠을 계속 걷자 종아리 아픔은 다 사라지고 발바닥은 오히려 돌을 찾아서 밟게 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움푹 파진 발바닥 부분으로 돌을 밟으면 발바닥이 시원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신발을 신고 걸을 때보다 맨발로 걷는 것이 훨씬 걷는 재미가 있었다. 맨발로 걷는 거리가 점차 늘어나자 허벅지가 뻐근하게 아프기 시작했지만 그 아픔은 기분 좋은 뻐근함이자 아픔이었다. 이후로 크게 바쁜 일이 없으면 맨발 걷기를 위해 거의 매일 정발산을 찾는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은 몇 가지 부류가 있는 듯하다. 혼자서 천천히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쫓기듯이 빠르게 걷는 사람이 있다. 두 명이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람들은 주로 여성들이다. 무리를 지어 걷는 사람들 역시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온 가족이 함께 걷는 사람들은 느긋하게 걸으며 걷는 것 자체를 즐기는 듯하다. 초등학교 어린이까지 맨발로 걷는 가족도 있다. 걷는 모습은 다 달라도 생각은 아프지 말고 건강히 살아야지 하나일 것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함께 대관령 소나무 숲길을 다녀왔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끝도 없이 자라고 있었다. 큰 나무는 몇 아름은 될 것 같았다. 100여 년 전 소나무 씨를 심어 조성한 인공림이라고 했다. 숲길은 평일이라서인지 아주 한산하고 고요했다. 길이 그렇게 가파르지도 않아 걷기에도 편했다. 한참을 가다가 맨발로 걷고 있는 한 젊은이를 만났다. 발이 아프지 않냐고 물으니 걸을 만하다고 했다. 돌이 많아 맨발로 걷기에는 상당히 불편하리라 생각했는데 아니라고 하니 나도 신발을 벗고 걸어보기로 했다. 내리막길은 많이 조심해야 했지만 크게 힘들거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이제 맨발 걷기를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났다. 기분이 그래선지 상당히 몸이 좋아진 것 같다. 요 며칠 비가 내리고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 정발산에는 극성스레 꿀밤을 줍던 사람들조차 보이지 않는다. 도토리를 줍지 말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던 사람들이 이 정도 추위에 위축되다니 우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람이 불자 여기저기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과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완전히 다른 부류인가 보다. 


휴일인데도 추워서인지 둘레길을 걷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꽤 쌀쌀한 날씨에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은 생각 외로 많다. 그런데도 길바닥이 차가울 것 같아 신발을 벗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냥 신발을 신은 채 걷기로 한다. 한참을 걸어 정상을 지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자 내면에서 맨발로 걸어보라고 유혹하는 소리가 자꾸 들린다. 겨울이 오기 전 30회는 채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소리다. 그래 발이 시리면 얼마나 시릴까 신발을 벗는다. 역시나 발바닥이 시리다. 계속 걸으면 괜찮겠지 생각하며 한참을 걸어도 찬 기운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흙이 잔뜩 묻은 발로 신발을 신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냥 계속 걷기로 한다. 마침내 수돗가에 이르렀지만 여기서 멈추기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수돗가까지 가서 발을 닦기로 한다.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다가 다행스럽게도 이내 그친다. 


이제 날씨가 싸늘해지면 맨발 걷기는 내년 봄까지는 멈춰야 할 것이다. 벌써 이렇게 발이 시리고 추운데 영하의 날씨에 맨발로 걸을 자신은 없는 것이다. 신문에 보도된 맨발로 걸어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는 분은 2월부터 맨발로 걸었다던데 그런 절박함이 없으니 이런 정도의 날씨조차 이기지 못하는 거 아니겠는가. 스스로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발이 시리고 몸이 춥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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