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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Oct 12. 2023

그런데도 선생님은 존중받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신다고 했습니다. 가슴이 설렜습니다. 선생님이 우리 집에 오시면 나를 많이 칭찬해 주시고 나와 이야기도 나누리라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예상대로 우리 집을 맨 먼저 방문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나는 찾지도 않으시고 아버지와 술만 드셨습니다. 그러다 해가 질 무렵 저녁 드시고 가시라는 말씀도 뿌리치고 휘청휘청 떠나시는 거였습니다.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신다고 하면 학부모님들은 아주 긴장을 하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생님은 아주 많이 배운 분이고 귀한 분이어서 응대하기가 힘들 거 같았기 때문이었겠지요. 또한 선생님을 소홀히 대접할 수도 없기 때문이기도 했을 테고요. 잔뜩 긴장하며 선생님을 기다리던 친구 엄마들은 선생님이 그냥 떠나셨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가슴을 한껏 쓸어내렸을 것입니다. 선생님 만나는 일이 보통 부담되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이후에도 매년 선생님의 가정방문은 계속되었지만 1학년 때처럼 선생님 방문은 그리 반갑지도 기다려지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긴장되고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매번 우리 동네에 선생님이 오시면 내가 친구들 집을 일일이 다 안내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생님을 모시고 친구네 집을 방문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을 불편하지 않게 해드려야 하고 이동 중에 선생님과 뭔가 대화를 나눠야 했기 때문이었지요.

친구들 집에서는 늘 어머니들만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들은 모두 들에 나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선생님을 만나는 힘든 일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머니들은 대접할 것이 없어 어떻게 하느냐며 몹시도 송구스러워하지만 선생님은 그냥 물이나 한 그릇 달라고 하시곤 했습니다.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선생님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면서도 선생님께 한 가지 부탁하는 말은 절대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 인간 되도록 많이 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때려 달라는 건가 참 이상한 생각이 들곤 했었답니다.

2학년 때였습니다. 아버지께 학급비를 내야 한다며 돈 10 환을 달라고 했습니다. 학급비는 4 환이었습니다. 남는 돈 6 환으로 볼펜을 사고 만화책을 한 권 샀습니다. 연필처럼 칼로 깎지 않고도 계속 쓸 수 있는 볼펜이라는 것이 그렇게 신기할 수 없었던 거지요. 그러고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던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아버지께서 학급비를 얼마 달라고 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아버지는 정말 무서운 분이었거든요. 단 한 번도 우리 형제들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매질을 한 적이 없었는데도 아버지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분이었습니다.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어 10 환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남은 돈으로는 뭘 했느냐고 또 물으셨습니다. 모기만 한 소리로 만화책을 사고 볼펜이라는 걸 샀다고 말씀드렸지요. 아버지는 한참이나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슴은 마구 쿵쾅거리고 오금은 저렸습니다. 그 길지 않은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다 아버지는 조용히 ‘나는 안다. 아부지는 다 안다’ 하시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아버지께 거짓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지 다 아는 분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일을 동네 친구 녀석이 알고는 학교에서 선생님께 고자질을 했답니다. 선생님은 회초리로 내 종아리를 피멍이 들도록 때렸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이미 용서를 받았는데 종아리를 맞는다는 것이 참 억울한 일이었습니다. 반 아이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선생님 앞으로 불려 나가 다리를 걷고 매를 맞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때리는 선생님이 밉고 싫었습니다. 안경 쓴 뚱뚱한 여선생님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교실을 공포분위기로 만드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반 아이가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하는 때였고 다른 하나는 아이를 앞으로 불러내 서로 상대방의 귀를 잡고 힘껏 때리게 하는 벌을 주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떤 아이가 혹 돈이나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지면 선생님은 반 아이들을 모두 책상 위로 올라가게 하고는 무릎을 꿇고 눈을 감으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돈을 훔친 사람이 나올 때까지 좁은 책상 위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고 눈을 감고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두 팔을 들고 있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돈을 훔친 사람이 나올 때까지 집에도 보내지 않을 거라고 엄포를 놓기도 합니다. 교실 안은 완전 공포분위기로 얼어붙습니다. 다리에 쥐가 납니다. 팔이 아파옵니다. 견디기 힘들게 된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훔친 사람 나오라고 수군댑니다. 그런다고 돈을 훔친 아이가 나올 리가 없지요. 돈이나 물건을 훔친 사람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돈이나 물건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고 어디 빠뜨렸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죄 없는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공포 분위기로 몰아넣으면서도 범인을 찾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옆 친구와 심하게 떠들거나 싸움을 하게 되면 선생님은 두 아이를 앞으로 불러냅니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상대의 귀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상대의 뺨을 힘껏 후려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란다고 친구의 뺨을 세게 칠 수는 없잖아요. 그저 치는 시늉만 하고 말지요. 선생님은 그렇게 약하게 말고 아주 세게 때리라고 해도 아이는 조금 더 세게 치는 시늉만 하고 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버럭 화를 내며 ‘이렇게 치란 말이야’ 하며 한 아이의 뺨을 있는 힘껏 후려치는 시범을 보입니다. 맞은 아이는 겁에 질려 상대 아이를 있는 힘껏 후려치게 됩니다. 친구로부터 뺨을 맞은 아이는 분한 생각에 맞은 것 이상으로 더 세게 후려치게 되지요. 그때부터는 감정까지 실려 어떻게든 상대보다 더 강하게 치려고 씩씩거리게 되지요. 교실 안은 온통 공포로 얼어붙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러한 선생님을 좋아할 수는 없었습니다. 존경할 수는 더더욱 없는 거고요. 당시 아이들은 선생님께 그렇게 맞고 벌을 서도 집에 가서 부모님께 일러바칠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그런 비교육적이고 몰인격적인 처사를 부모님께 말씀드려도 부모님들은 아이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너희가 잘못했으니까 그랬겠지’하며 선생님 편을 들었을 테니까 말이지요. 당시 시골에서 학교 선생님들은 정말 학부모들로부터 선망받고 존경받았습니다. 요즘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학부모들이 선생님께 험한 말을 한다든가 선생님을 아래로 보고 하대하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지요.

당시 이러한 선생님들의 처사가 옳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일을 대놓고 비난하거나 욕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비교육적인 처사에 대해 비난하거나 항의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교육의 일환이거니 생각하고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선생님을 어려워하고 선생님의 결정을 따르고 존중했습니다. 선생님은 정말 존경받는 직업이었고 학부모들은 선생님을 정말 어려워했습니다.

요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참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내 아이가 소중한 만큼 남의 아이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옳은 일일 텐데도 많은 학부모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이들조차 자신의 잘못은 전혀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을 존중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인식하고 깔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가 어떤 분인데, 또는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겨우 선생 주제에... 하는 생각으로 선생님을 무시하는 아이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어찌 중학생이,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선생님을 놀리고 무시하고 폭행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고등학교 2학년 체육시간 때였습니다. 운동장에서 반 전체 아이들이 주먹을 쥐고 엎드린 채로 주먹으로 농구공을 굴려 목표지점을 돌아오게 하는 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모두의 주먹은 너덜너덜 까지고 피가 철철 흘렀지만 중도에 그만 둘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시키는 일을 반발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부 투덜대는 친구가 있긴 했지만 선생님을 욕하거나 크게 비난하지는 않았습니다. 학부모들의 항의는 당연히 없었지요.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우리 반 아이들이 재미 삼아 실시한 선생님 대상 인기투표에서 그 선생님이 글쎄 일등을 차지하더라니까요. 그 선생님이 화끈해서 좋다나 뭐라나... 한때 그런 시절도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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