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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ryblack Feb 05. 2024

꿈과 여행

어디 가지 말기

"어릴 때부터 내게 꿈은 너무 중요했어. 꿈을 꾸면 언제든지 지옥 같은 삶을 벗어날 수 있었어."

"어떤 꿈을 꾸었는데?"

"그냥, 한국을 떠나는 꿈. 해외를 돌아다니며 여행처럼 사는 꿈. 외국남자랑 결혼도 하고"

N은 20대 초반에 해외로 유학을 갔다. 한국을 떠나 유럽을 유람하고 학위를 얻고 한국에 돌아왔다. 외국인 남자친구도 여럿 만났다.

어떤 성공한 사람의 오프닝 같다. 혹은 자기 개발서에 나올 법한 해피엔딩이다.

 "여행은 어땠는데?"

 "거지 같았어. 너무 가난해서 거지같이 하고 다녔거든. 바게트 하나로 하루를 때웠어. 파리에 간 날은 비가 왔는데 갈 데가 없어서 처마밑에서 수그려 비가 그치길 기다렸어. 내가 너무 불쌍했다는 기억밖에 없어"

그래도 좋은 게 있었겠지.

"미술관에서 고흐 작품을 봤는데, 너무 작은 거야. 어이가 없었어. 그래도 그 작품들 앞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까. 인생에서 한번 겪어야 할 것을 겪고 왔다고 생각했어. 그 나이 때에만 할 수 있는 게 있는 어느 숙제를 풀은 것처럼. 그니까... 한마디로.. 찍고 온 거지."

 해피엔딩 이후 지금 N은 끝나지 않은 어느 삶을 살고 있다. 꿈 너머 지난밤에도 N은 울었고 나는 토닥였다.

N은 종종 꿈이 자신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불행했고 그래서 꿈을 꾸면 버틸 수 있었고, 꿈을 위해 노력했고, 이만큼 노력했으니 자신은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고. 그런데 세상이 자기를 버렸다고. 아무도 보상해주지 않는다고 울었다. 본인이 다시 행복해지려면 여길 뜨고 여행을 가야 한다면서. 그러면서 나에게 '너는 행복해?' 계속해서 물었다.

'노력', '자격', ' 버리다', ' 보상', '꿈' 같은 것. 내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이었고 생소했고 불안했다. 하지만 콕 짚어서 뭐가 위험한지 무어라 말하기 어려웠다.

꿈, 여행. 멀리 있는 걸 동경하는 게 너와 나에게 좋을까? 그건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얼마큼 동경해야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행복한 장면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N은 뜨거운 해변가에 누워 태닝을 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반면 나는 낮의 한강에서 흔들리는 버드나무나 밤의 한강에 반사되어 어른거리는 도시빛을 떠올렸다. 마음이 가라앉고 평온해지면서도 한편에서는 쓸쓸한 장면들이었다.

좋은 것들은 다 그래. 나는 행복이나 꿈을 떠올리면 아름답지만 동시에 씁쓸한 맛을 느꼈다.

나는 곧장 김윤아의 '꿈'을 생각한다. 혼자 코인 노래방에서 부르며 울었던 시간들도 짭짤히 생각난다.

스무 살 때부터 10년 동안 영화미술을 했었다. 공간을 내 맘대로 꾸밀 생각을 하면 심장이 뛰었었다. 하지만 상업영화 현장을 견딜 만큼 빠르지도 무디지도 못했고. 독립영화를 할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지도 못했다. 능력이 없어서, 밤새기 싫어서, 건강이 안 좋아서, 우울증이 심해져서, 집에 빚이 많아서, 아빠가 아파서,... 서른이어서.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내 몸이 지속가능하게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꿈을 포기했다.

그 뒤로 나는 현실 속에 발붙이고 사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긍정했다. 꿈대로 살지 않는 대다수의 삶들이 꿈이 없거나 불타오를 줄 몰라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고 책임지기 위해서였다는걸 겪어버렸다.

 그 긍정이 비겁해 보이지 않기 위해  내가 떠나온 곳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하고 싶은 일로 자신을 불태우는 사람의 삶을 난 이미 살아봤고 그게 매우 견딜 수 없어서 물러났으니까. 오랜만에 영화를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그 자리에 견디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당신은 마치 날고 있는 새 같아서, 그저 꿈을 위해 열심히 날갯짓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동경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힘들면 얼른 불난 집에서 뛰쳐나오라고 덧붙였다. '불난 집'을 뛰쳐나온 것에 대해서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꿈을 포기하는 것 또한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작 꿈, 그게 삶의 동력이 된다는 말이 나를 흔들었다.

이제 나에게는 무리하지 않고 아프지 않은 게 내 목표가 되어버렸는데.

꿈 덕분에 살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 단지 내가 체념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니 내게 꿈은 그렇지 않아.'라고 단언해서 말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나의 가까운 곳에 꿈 때문에 숨이 벅찬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마치 꿈으로 부푼 헬륨가스 풍선 끈을 목에 맨 모양이다. 꿈이 부풀어 두둥실 떠올라 발이 땅에서 떨어지면 목이 조이는 것이다. 결국 N도 나도 꿈 때문에 숨 쉴 수 없었다. 꿈을 가진 것 자체만으로 행복하지 못했던 것은 꿈에 다가가는 길이 거칠고 멀었기 때문이고. 그것보다 더 아팠던 이유는 꿈을 이룬 내 모습으로 나를 증명하고 세상으로부터 보상받고 싶어 했기 때문이겠지.

더 이상 어떤 목적이나 존재의 유효성 때문에 사는 것을 포기했다.

그런 나는 이제 꿈을 무어라 말해야 할까. 꿈은 여전히 미래를 향한 동력이어야 할까. 꿈이 삶을 자꾸 비참하게 하면, 그래서 자꾸 허공에 발길질을 하게 하면, 현실에 발을 붙이고 내가 두 발로 걸어갈 수 있도록 그 꿈을 끊어내는 것 또한 주도적인 삶 아닐까.

깔끔하게 꿈을 가장 꿈다운 것으로 부르고 싶다.

잠잘 때 꾸는 '꿈'. 그 자체가 모호하고 몽글몽글하듯이 꿈의 정의 또한 그렇다. 장래희망 혹은 먹고 살 방법, 행복하고 강렬하거나 몽롱한 경험, 비현실적인 것 등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 않나. 가장 꿈다운 것. N이 꿈이라 말했던 여행을 떠올려보았다. 여행은 분명 꿈과 가장 닮아있었다.

처음 중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 친구와 둘이 사막에서 헤드뱅잉을 하며 자우림 뮤직비디오를 찍었더랬다. 어깨에 기댄 채 바닥에 누워 몽골 밤의 별을 바라보았다. 부안으로 여행을 갔을 땐 석양을 바라보며 따듯한 물속에서 유영을 했다. 웃통을 벗고 가슴을 드러내고 맨몸으로 준비운동을 하며 까르르 웃고, 물 위에 떠서 바닷물이 젖은 몸이 햇빛을 오롯이 반사해 내는 걸 바라보았다.

혼자 겨울에 제주를 여행했을 때, 오름을 올라 얽히고설킨 회색 나무들 사이에 서있었다. 그 속에서 숨어있던 노루의 흰 엉덩이를 발견했고, 노루가 도망가자 까마귀가 하늘을 뒤덮는 걸 바라봤었다. 광주의 호텔에선 혼자 노래를 틀고 춤을 추었다.

혼자 있을 때 그 장면들을 오롯이 고독하게 겪는다는 점에서 여행은 꿈과 같았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그 순간 누구에게도 전할 수 없으니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갔을 때에도 우리는 꿈같이 쓸데없는 대화들과 헛짓거리를 나누며 웃었다.

여행은 쓸쓸한 과거도 아니고 지향해야 할 미래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순간 현재에 집중하게 했던 아름다움 그 자체로 내 안에 남아있다.

 여행은 그 자리에 서있는 나, 가장 현실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었다. 꿈도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종종 할머니가 된 나를 그려본다.

음. 지금처럼 새 옷은 잘 사지 않겠지. 빈티지 스타일의 워크웨어를 입을 것 같고. 멋진 옷들을 오래오래 잘 입어서 아예 더 스타일 있을 것 같아.  못 다루는 장비가 없어서 동네에서 고장 난 것은 고쳐 쓰고 가구도 뚝딱뚝딱 만들 줄 아는 멋진 할머니였으면 좋겠어.

심심하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거야.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어. 동시에 세심하고 따듯한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마을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을 것 같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따듯한 사람일 거 같아. 특히 젊은 사람들과도 계속 편하게 관계 맺는 할머니면 좋겠어. 계속해서 시도하고. 계속해서 배우고 계속해서 연결되고 또 세상의 부조리와 싸우는 사람이면 좋겠어. 아, 그리고 집이 있으면 좋겠고 텃밭이 있으면 좋겠어.

이렇게 구체적으로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 생각을 해보면 사실 그 할머니랑 지금의 내가 별반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지금처럼 입고 지금처럼 따듯한 말을 건네면 된다. 지금처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배우면 된다.

'아 지금처럼 살기만 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이 들면 마음에 햇빛처럼 안심이 들고 따뜻해진다. '텃밭이 있는 집을 살 수 있도록 노력을 조금더 해야겠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뭐. 힘내보고.

현실에서 열심히 살다 보면 슬그머니 "그래서 어떻게 살 건데?"라고 못된 파수꾼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땐 깔끔하게 씹는다. 다만  '이렇게 사는 거 재밌을 것 같지 않아?'라고 아이의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 나는 귀 기울인다.

있잖아 N, 그냥 평생을 하루하루 원하는 모습대로 사는 게 꿈처럼 사는 거 아닐까. 한시 한때를 보내더라도 내일 죽어도 괜찮은 삶처럼.

그게 바로 꿈처럼 사는 것 아닐까

N에게 말하고싶다. 너의 여행같은, 또 꿈같은 하루하루를 기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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