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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rryblack Aug 20. 2024

어쩌죠, 제가 집중이 안 돼요

당신은 이런 순간에 어떻게 삶을 연속해 왔나요?

일을 하는 게 어려울 만큼 집중하기 힘들 때 

당신은 어떻게 견뎌왔나요?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게 흔들렸다. 자리에 앉아있으면 10분에 한번씩은 일어나기 일쑤였다. 화장실을 가거나 담배를 태우거나 하며 안달을 냈다. 집중을 할 수 없었고 정신이 혼미했다. 

내게 별일이 일어난 건 아니다. 그냥 요즘 그렇다.


이 문제에 대하여, 최근 내가 존경하는 어른들에게 조언을 물었다. 

일을 하는 게 어려울 만큼 기력이 좋지 않은 순간들에 당신들은 어떻게 견뎌왔나요? 

K는 평소에 체력을 비축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살면서 한 번도 지각을 하거나 잠수를 탄 적이 없는 사람에게 난 어떤 인간적인 답변을 기대한 것일까. 

그래도 완벽해 보였던 인간에게 '헬스장을 다닌 적이 있다'거나, '감방에서 군인 같은 생활을 한 것이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건 꽤나 수확이었다. '모든 것을 긍정하는 당신, 참 대단하시네요. 그래서 저도 체력비축을 위해 감방에 들어가야 하나요?', '국가폭력이라도 좋으니 타인에게 내 인생을 맡기고 싶은 간절함이 마음에 깃드는 것은 어떻게 하실래요?'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L은 너는 나랑 비슷한 스타일이니까 체력비축 같은 것보다는 이게 더 몸에 맞을 거라며 강조하시면서 '오래 쉬어야 한다'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리고 일에서 깨닫지 못한 정답들이 사랑과 고통을 겪는 시간들에 있었다고 했다. 상사라는 분이 일을 쉬고 사랑과 고통을 겪고 오라니. 아주 마음에 드는 답변이었지만 직속상사인 K앞에서 크게 기뻐하긴 어려웠다. 둘 다 내게 그래도 기본적인 능력치가 있는 사람이니, 지금 당장 효율을 내지 못한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 바쁜 시기에 효율을 내지 않았느냐며, 지금 체력이 떨어지는 건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보다 삶의 연속에 대해 고민해 왔을 늙은 이들에게 이런 질문들이 이전에 논해진 적이 있을까? 스몰토킹 주제로 재미있는 얘기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남기 위해 운동해야 한다는 말 

 살아남기 위해 건강을 생각하는 나이가 곧 올 거라는 말들에 코웃음 쳤던 때가 있었다. 당시 코웃음을 쳤던 이유는 그만큼 내 건강에 자신 있어서가 아니라, 힘들면 죽어야지 왜 살아남냐는 비소 때문이었다. 30대가 되어보니 죽는 게 사는 것만큼 어렵다는 사실, 어느 순간 간택(죽고 싶어 하는 사람 한정) 받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조금은 받아들이고 있다.


꽤나 크게 받아들인 걸까. 바른 자세를 반복한 결과 거북이는 탈출했고 내 목과 쇄골을 찾았다. 어느새 주변인들에게 바른 자세로 앉아라, 서라, 걸어라, 뛰어라 할 만큼 바른 자세 전도사가 되어있기도 하다. 친구들은 누군가에게 나를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1분 플랭크를 하는 갓생인,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 땀을 흘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문제는, 그런데 왜 살아있는 게 힘드냐는 거다. 정말로 건강의 문제가 맞을까? 어느 때보다도 건강한 지금 왜 하필 나는 일에 집중이 되지 않을까? 


타임랩스로 사무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찍어서 재생해 보았다. 5분 동안 찍어본 영상 속의 내 몸뚱이는 짤랑이 수준으로 흔들렸다. 문제가 정신에 깃들어있는지 몸에 깃들어있는지 알 수 없다. 앉아있으면 관자놀이서부터 진동이 부르르부르르 거렸다. 무릎이 간질간질했다. 앉아있으면 용변이 마려웠고,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면 마렵지 않았다. 그럼 일어난 김에 담배를 태우러 간다. 역해서 구역질이 날 때까지 담배를 태운다. 하루에 반갑은 거뜬히 태우지만 그건 연초 기준일 뿐이다. 전자담배 도합 몇 개비를 태웠는지 세는 것도 수치스럽다. '중독'은 회피에서 온다는 말을, 알면서도 이런다. 그래. 회피하고 싶은데 어쩌라고..? 모든 것으로부터의 회피를 온몸으로 실천하는 중이다. 

무엇으로부터의 회피일까? 지금하고 있는 일이 싫은 건지 생각해 봤는데 이 일이 싫진 않다. 영화-미술-시민단체 활동 등, 세상에 재밌어 보이고 하고 싶은 일만 쏙쏙 골라서 해온 아주 못된 버릇을 가졌기 때문에, 이 일 조차 하고 싶지 않다는 건 그냥 말 그대로 '노동'이 싫다는 것 밖엔 없다.


집중이 안된다며 찡찡거리기 시작한 지 거의 3개월이 되었다. 동료들은 '너무 달려서 소진되어 버린 걸 거야'라며 나를 위로했다. 

이 착한 사람들. 만약 당신들이 속으로  '도대체 언제 일 할 건데? 계속 그렇게 업무시간에 담배를 태울 건가?'라고 욕을 해도 용서해주려 한다. 아마 그 목소리는 나의 것이기도 할 테다.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괴로운 사람은 나다. 가장 안달 나고 지겨운 사람도 나다. 이런 내가 밉고 별로고 하찮다. 그 하찮다는 감정. 매우 익숙한 감정이다.




병명이라는 변명

 예전에 ADHD를 진단받은 적이 있다. 당시에도 똑같았다. 일을 하려고 앉으면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일이 아닌 다른 짓을 하는 것은 너무 죄책감이 들어서, 딴짓은 최대한 하지 않았다. 예외로 당시 유일하게 허락했던 딴짓은 우는 것이었다. (우는 것도 딴짓이라면 딴짓일지도 모르겠다.) 일을 하기 싫어서 울었다. 엎드려서 꺼이꺼이 울었다. 울거나 일하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돌아버릴 것 같았고 뒤통수가 지끈지끈거렸고 손끝과 눈가가 떨렸다. 신체화증상이 심해서 우울증을 치료하러 정신과에 갔는데, ADHD도 의심된다고 했더니 테스트를 해보자고 하셨다.


기계 앞에서 시키는 대로 버튼을 눌러야 했다. 문제가 느리게 나오다가, 점점 빠르게 반복되었다. 나는 열심히 버튼을 누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거나 누르고 있었다. 간단한 문제일수록 자괴감이 들었다. 나를 문제 속으로 몰아넣는 느낌. 화가 나고 답답하고 어지러웠다. 검사결과는 ADHD였다. 당시 상담선생님은 우울증 때문에 ADHD가 온 건지 ADHD 때문에 우울증이 온 건지 선후관계가 분명하지 않다고 했다. 


 사실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ADHD들이 듣는 말들은 다 들으면서 컸어요. 

"제발 가만히 있어", "제발 집중해", "너무 집중하지 마", "제발 잃어버리지 좀 마", "또 어디서 다쳤니?", "내일모레가 수학여행이라고? 그걸 왜 지금말해?", "이 짱구야. 너한테 뭘 바라겠니" 등등... 우리 엄마가 옆에 있었다면 "확실합니다 의사양반"하고 의사에게 동조해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처방받은 ADHD 약을 먹었을 때 '세상, 명확하다'는 감각을 느꼈었다. 다른 우울증 약들은 내장에서 거부했지만 ADHD약은 거부감이 없었다. 역겨워도 먹어야 한다는 플라세보 효과 때문일지도 모른다. 퍼포먼스를 내고 칭찬받는 나에게 중독되었다. 그러나 그 약은 마약이고, 누가 먹어도 총명해지는 결과를 주는 약이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복용하던 당시, 일이 너무 바빠 약을 받으러 가지 못했던 날부터 나는 무너졌다. ADHD약은 증상을 나아지게 할 뿐 ADHD를 치료하진 않는다. 평생 나을 수 없는 것. 이 말은 그러한 증상이 곧 나 자체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ADHD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확답하기 꺼려진다. 여러모로 ADHD 같긴 하지만, 그냥 그게 나을 수 없는 나라고 생각하면, 나를 꼭 ADHD라고 설명해야 할까? 어차피 낫지도 않을 텐데. 

그저 세상 사람들, 저를 이해해 주세요라고 병명으로 변명을 하나 더 늘리는 것뿐 아닐까.


 최근에도 일을 부탁받아서 시작했는데 과몰입해서 장황한 결과물을 만들어버렸다. 부탁한 사람에게 이 정도로 노력을 기울이길 원하지 않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나는 '한번 빠지면 파고들 수밖에 없어, 난 ADHD니까.'라고 항변했다. 어떤 말을 들을지 뻔히 알면서 한 말이니까 변명이 맞았다. 그리고 당연히 '병명으로 변명하지 말라'는 답변을 받았다. 


약 없이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혹은 약 없이도 사람들과 잘 섞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과한 욕심일까? 내가 그-렇게 아프지 않다는, 그저 도피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은 날 도와줄까? 혹은 날 힘들게 할까. 



여전히 모르겠어요


 문제가 집중인지 / 체력인지 / 둘 다인지. 여전히 나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나는 생각보다 체력이 좋으며 나쁘고, 생각보다 집중력이 좋고 나쁘다. 그리고 지금은 둘 다 나쁘다. 이 둘의 선후관계란 없고 원인과 원인 혹은 결과와 결과일 뿐이다. 


나는 여전히 나의 퍼포먼스에 대한 평가가 두렵다. 그래서 계속해서 쉴새없이 진동하고 눈물지으면서 책상 앞에 앉아있길 고수한다. 그것 때문에 더 불안하고, 더 안달 난다.


되돌아보면 이런 이유로 나는 자주 뒤로 빠지고 도망쳤으며, 망치기도 했다. 동시에 누군가도 그럴 수 있음을 알고 제정신을 차리고 수습하고 책임져왔으며 누군가의 뒤를 지켜왔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은 내게 기대거나 내가 기대거나 할 수 있는 관계이다. 

"잠깐 누웠다 갈게. 미안. 기다려줘."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관계가 지금 내게 보약이다.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일에 집중할 수 있는지.

그래도 작은 즐거움 하나는 얻었다. 

"당신은 이런 순간에 어떻게 삶을 연속해 왔는지. "

이 질문이 꽤나 좋은 스몰토크의 이야기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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