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려움 대신 싸가지가 생긴 자리

싸가지가 생겼어

by 결 디자이너

두려움 대신 싸가지가 생긴 자리


싸가지가 생겼다
버릇 없는 게 아니라
버티던 마음이 처음으로
싹을 틔운 것이다


아침이었다. 보일러에 '점검'이라는 빨간 불이 들어왔고, 첫째는 머리를 감다 찬물로 마무리하며 나왔다.

“뜨거운 물이 안 나와. 머리 얼어버리는 줄...”

차분한 말투, 자포자기 같기도 했다. 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둘째는 다르게 반응했다.

“왜 또 안 되는 거야!”

문을 쾅, 닫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목소리는 텅 빈 접시처럼 바닥에 부딪혔다.

싸가지가 생긴 자리

보일러 점검 표시는 ‘됐다 안됐다’ 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고칠라치면 잘 돌아가서 보일러 점검을 미루고 있던 참이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일어날까 말까 하며 모든 소리를 듣고 있었다. 진작 고쳐 놓을 것을 왜 자꾸 고치는 걸 미루냐고 엄마에게 질책하는 말로 들렸다. 아침부터 성질을 부리는 거냐, 이미 고장 난 보일러 탓을 하면 뭐가 바뀌냐, 말을 꺼낼 뻔했지만 삼켰다.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입보다 혀 안쪽을 더 자주 씹는다. 말을 하지 않기 위해.

그러니까 둘째의 반응은 좀 낯설고 진했다. 희로애락의 말보다는 표정이 먼저였던 아이. 중학생이 되면서 말수는 급격히 줄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방 안에서 보냈다. 친구들과 별다른 교류 없이, 거의 무채색 옷을 입고 다녔다. 대안 초등학교를 나와 사교육 없이 지냈던 둘째는 중학교를 가더니 학업을 따라가기 힘들어했다. 특히 영어 수업을 못 따라가겠다고 상담 선생님을 스스로 찾아갈 정도로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다. 마스크와 모자는 필수. 작은 얼굴은 언제나 반쯤 가려져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걱정할 정도로, 둘째의 1학년은 완전 회색빛이었다.

그런 아이가 2학년 후반부터 학교생활에서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느 딸들처럼 집에 와서 재잘거리거나 딱히 부모에게 이것저것 부탁해서 귀찮게 하는 법도 없었다. 우리 부부는 닫힌 방문과 복도 사이에서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간 아이의 시간을 인정해주었다.

사춘기 뇌의 회로가 뒤섞이는 시기, 뇌의 구조가 자리를 잡혀갈 때까지 오늘의 이 분노조차도 아이 나름대로 감정을 보호하는 방식이란 걸.


말이 된 감정

그날 아침, 유부초밥을 싸 놓고 식탁 위에 올려놨다. 책가방을 멘 첫째, 둘째가 거실로 나왔다. 힐끔 보더니 둘째는 먹지 않고 소파에 조용히 앉았다.

“유부말고 김으로만 싸줘?”

“어.”

단답이었다. 하지만, 아까의 화난 목소리는 이미 어딘가로 흩어졌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난 주 다녀온 뇌교육 캠프에 대해 물었다.

“캠프 어땠어?”

싸가지가 생긴 자리

“잘 모르겠어”

나는 둘째의 주위를 맴도는 감정의 기류를 살피며 아무렇지 않게 김에 밥을 싸서 접시에 올렸다.

“근데 선생님이 너 되게 칭찬하시더라. 무슨 일 있었어?”

조심스레, 칭찬을 섞어 던진 질문이었다. 냉장고 문을 천천히 열던 둘째는 그 자리에 서서 뜻밖의 말을 툭 뱉었다.

“두려움이 없어진 대신, 싸가지가 생겼어.”

순간, 내 머리가 띵했다. 정확히 말하면, 머리가 느껴야 할 감각을 먼저 심장이 알아챘다. 감정의 정체를 분석하기도 전에 나는 그 말이 진실이라는 걸 직감했다.

“두려움이 없어진 대신, 싸가지가 생겼어?”

나는 그 말을 되물으며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시간을 벌었다. 둘째의 표정은 무례하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냥, 담담했다. 마치 오랫동안 자신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스스로 관찰하고 말로 꺼내놓는 표정이었다.

“이상하게 엄마는 네 말이 멋있게 들리네! 무슨 말이야?”

“내가 뭔가 하려고 하면 도전하지 못하고 자꾸 두렵고 그랬거든. 그런데 그런 게 없어지고 그 자리에 싸가지가 생긴 것 같아.”

그 말은 선언처럼 들렸다. 이제는 내가 나를 숨기지 않겠다는. 누구를 공격하려는 말이 아니라 자기를 지키기 시작한 언어.

그러고 보니, 캠프에서 선생님이 전해준 말도 생각났다. 호흡명상을 하는데 가슴에서 호흡이 내려가질 않고 명치 부분을 누르니 몹시 아프다고 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내 가슴을 손으로 살짝 눌렀는데 거기가 너무 아프더라고, 그러고 나서 요즘 힘든 일 있어? 라고 물으시는데...이상하게 눈물이 났어. 나 요즘 진짜 힘들었거든.”

나는 말이 막혔다.

“그렇게 한 마디도 못해 준 엄마였네...”

“이제 좀 나아졌어.”

아이의 말은 ‘싸가지’가 아니었다. ‘감정을 말할 수 있게 된 나’였다. 두려움이 빠져나간 자리에 감정의

싸가지가 생긴 자리

언어가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감정은 말보다 먼저 몸에 나타난다. ‘싸가지’는 그저 말이 되지 못했던 마음이 조금씩 문장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이지 아닐까.


자기 언어의 씨앗

‘싸가지’는 원래 ‘싹수’의 방언이라고 한다. ‘어떤 일이나 사람이 잘 될 것 같은 낌새’를 뜻하는 말. ‘싹’에 ‘아지’가 결합된 단어로, 씨에서 처음 돋아나는 어린 잎이나 줄기를 뜻한다. 매우 좋은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아이의 감정이 언어가 되는 과정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일은 흔치 않으니까. 그 말은 단어가 아니라, 그 아이 안에 처음 생긴 자기 언어의 씨앗이었다. 누군가는 싸가지 없는 말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것을 자기 감정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인 일이라 생각했다. 그 뒤로 둘째는 종종 싸가지 있는 말들을 꺼냈다.

“내가 조사한 자료를 다 무시하고 자기가 준비한 것만 발표했어. 지난번에도 그랬거든. 그래서 왜 내 거 무시했냐고 물었어.”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어갔을 상황이었다. 지금까지의 둘째라면 속으로만 삭이고 '괜찮아'라고 웃어넘겼을 테니까.

“친구는 뭐라고 했어?”

“처음엔 ‘미안, 깜빡했어’ 이러더니, 선생님이 칭찬해주니까 갑자기 ‘내가 더 잘 정리해서 그런 거야’ 이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왜 깜빡했다고 거짓말해?’ 이렇게.”

말끝마다 눈이 반짝였다. 처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아이처럼, 처음으로 수영장 깊은 데 들어간 아이처럼. 그 눈빛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반가웠다.

“내가 너무 심했어?”

둘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쿵쾅거리던 심장이 잠시 멈춘 것 같았다. 딸아이의 질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할까. 어떤 말을 해주어야, 이 아이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용기를 잃지 않을까.

“아니, 심하지 않았어. 네 기분을 솔직하게 표현한 거니까.”

내 대답에 아이는 활짝 웃었다.

“근데 나도 놀랐어. 내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거든.”

그 웃음이 오래도록 유지되기를, 지금 이 순간처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를.


두려움 대신 자기다운 말의 힘

‘싸가지’가 생겼어라는 말은 이제 나는 ‘화내도 괜찮다’는 선언이었다. 이제는 화내도 된다는 허락. 감정을 꺼내도 된다는 허용. 감정이 차올라도 눌렀고, 울컥해도 삼켰고, 표현하면 누군가가 불편해할까봐 자기 감정을 오래 참아왔던 아이였다.

감정을 스스로 허락한 순간 ‘싸가지’라는 말로 감정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였다. 누군가는 무례하다고 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자기다움’ 이었다.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자신의 변호를 말로 건네기 시작한 첫 순간, 그 말이 누군가를 향해 날아가지 않고 자기 안에 스스로 도착한 그 언어. 부드럽지도, 고상하지도 않지만 가장 그 애 다운 말, 바로 그래서 더 진실한 말. 그런 말은 마음에 꽂힌다.

나는 그 말을 처음 이해한 최초의 관찰자이자 청중이자 기록자였다. 그 날 싸가지가 생긴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은 나도 더 이상 예의 속에 침묵하는 어른으로만 있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말보다 먼저 반응한 그 마음. 그것이 아이의 성장보다 어쩌면 나의 성장에 더 깊게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둘째의 옷장이 새로운 색깔의 옷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