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 후 만난 첫 담임 선생님은 체육선생님이자 선도부장이셨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늘 학급회장을 맡으며 나름(?) 모범생으로 살아왔는데,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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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내 머리색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교문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복장, 두발, 인사 태도’ 등을 지켜보던 담임은 유난히 금빛으로 빛나는 내 머리카락 색이 탐탁지 않았다. 아침마다 염색했냐 물으시고 제대로 된 색으로 만들어오라는데, 이거야 원, ‘태생이 (요즘 말로) 애쉬 브라운이거든요!’ 할 수도 없고. 두 눈을 내리깔고 “저 염색 안 했는데요.”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장난꾸러기 오빠 때문이 아닌, 나 때문에 어머니가 학교로 오시는 일이 생겨버렸다.
고등학교에 입학했더니 이번에는 선생님이 아닌 같은 반 아이들이 말썽이었다. 소위 ‘날라리’ 친구들이 내 머리색이 탐나 어느 미용실에서 염색했는지, 어떤 색으로 염색을 했는지 물으며 무척이나 나를 귀찮게 했다. “우리 할아버지 독일 사람이야!”. 그 이후 머리색으로 시달릴 일은 다시는 생기지 않았다.
요즘은 실제로 나같이 갈색 머리색을 지닌 사람도 많고, 염색약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색상으로 자신의 머리색을 물들이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유난히 밝은 톤의 갈색 내 머리색이 상당히 튀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내 머리색이 정말 싫었다. 지금은 수년간의 펌을 해서인지, 나이 탓인지, 한 번도 염색이란 걸 해보지 않았는데도 적당하게 밝은 갈색으로 변했다. 좋은 시대를 만나 회사 다닐 때 같은 팀 과장님에게 "너의 고급진 애 쉬 브라운, 너무 부러워“라는 말을 듣기도 했으니 싫어할 이유는 없다.
그래도 나는 평생 해 보지 못한 염색을 해보고 싶다. 샴푸 광고에서 종종 나오는 긴 찰랑거리는 블루블랙으로. 대학생 때 염색하고 싶다고 하니, 친정어머니는 ’뱃속부터 비싼 염색 다 해서 낳아놓았더니…. 매달 염색비를 받아도 시원찮은데 무슨 염색?!‘ 라고 하시며 농담반 진담반 섞인 말씀을 늘 하셨다. 나 역시 한 번도 갖지 못한 색을 위한 도전이 영 자신 없었고, 진짜 내 머리카락 색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에 시도하지 못했다. 어떤 느낌일까. 내가 검은색 머리를 갖는다는 것이.
일단 청옥 빛 은은하게 띠는 그 매끈하게 찰랑거리는 검은색 머리를 갖기 위해 푸석거리는 머릿결부터 관리해야겠다. 용기가 나서 진짜 염색을 하게 되더라도 그동안 밀린 ’엄마표 염색‘ 비용 청산부터 해야 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