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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씽 Jul 21. 2016

감귤농사의 천적은?

초보 농부 고군분투기 2

지난 5월 7일 감귤나무에 기계유제라는 약을 뿌렸다.


일반적인 감귤 밭에 가보면 나무 밑엔 잡초 하나 없이 맨들 맨들 하고 나무엔 벌레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상(上)품의 과일을 만들기 위해 농부들은 많은 노력들을 하는데 그중 농약 치는 일을 빼놓을 수 없다. (요즘엔 농약은 물론 풀도 베지 않고 자연의 힘으로만 농사를 짓는 분도 많이 계시지만 그건 논외로 하자)

한달에 한 번꼴로 농약을 뿌려 과수에 붙은 각종 벌레들을 잡고, 감귤나무로 가는 영양분이 바닥의 풀들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풀을 깎거나 제초제를 뿌린다.


나와 형님이 하는 밭은 유기농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농약(1년에 4번 정도)을 치는 저농약 농법을 쓰고 있다. 될 수 있으면 농약을 뿌리지 않고 싶은데 나무가 오래된데다 날마다 밭에서 일하는 게 아닌지라 최소한의 관리가 필요해 최소한의 약을 뿌리는 대신 땅이 죽지 않도록 제초제는 쓰지 않는다.


유기농이나 저농약 감귤 표면을 보면 거뭇거뭇한 게 붙어 있거나 각질처럼 하얗고 딱딱하게 변한 과육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게 깍지벌레와 응애 벌레 때문이라고.


매끈한 표면에 왁스까지 더해진 예쁜(?) 과육만 먹던 소비자들이 이런 귤을 보면 '못 먹는 귤' 취급을 하지만 유기농 하시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귤'만 찾는 이들도 꽤 많이 늘었다. 소비자 시장이 조금 늘어났다고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인지라 이 벌레를 없애는데 애를 쓰는데 일반적인 농가에서는 벌레가 창궐하기 시작하는 5월 경에 기계유제라는 약품을 감귤나무에 도포한다.


이 기계유제는 일종의 기름덩어리다. 이걸 감귤나무에 뿌려주면 기름성분이 해충의 몸에 묻어 숨을 못 쉬어 죽게 만드는 약이라고.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키우는 농가에서는 이 기계유제조차 사용 안 하고 천연 농약을 살포한다고 하는데 가격도 비싸고, 온전히 내 소유의 밭이 아닌지라 기계유제 대체재는 나중에 해볼 생각이다.



일단 말통에 물을 받고 기계유제를 넣은 후 모터로 휘젓기를 시작하면서 일의 시작이다.  

2천500평 되는 밭에 약을 치는데 말통 3통이 들어간다. 둘이서 아침 7시 반부터 시작해 마무리하니 오후 3시가 다됐다.

 

나야 줄만 잡고 있었으니 힘든 거 모르고 있었지만 나무마다 꼼꼼하게 약을 친 태권 형님의 팔뚝은 이미 남의 팔뚝 -_-;;


'소꿉놀이'

늦은 점심을 먹은 후에는 장모님, 와이프와 함께 밭 한켠에 오일장에서 사 온 모종을 심었다.

장모님 왈 울 사위 소꿉장난한단다. 수박과 참외, 고추, 토마토 등을 심었는데 얼마나 잘 자랄 건지.

밥 먹은 지 얼마 안돼 숨쉬기도 힘든데 백만 년 만에 곡괭이 질을 하려니 무지 힘들었는데 사람들은 그 모습이 웃긴가 보다.


봄철 감귤밭을 지나면 향긋한 향이 지천으로 풍긴다. 아카시아의 향보다 그윽하고 진한 향을 맡고 있노라면...


혼자서 밭일을 시작했다고 하니 반응이 제각각이다.  

처음엔 '우와' 하더니 나중엔 '네가 그걸 할 수 있겠어', '그 힘든걸 뭣하러 하냐'는 이야기. 사람들에게 제주 내려간다 이야기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다.


그러게.

밭은 커녕 흙길 걸어본지도 아득한 내가, 초딩들도 아는 나무나 풀이름도 모르는 내가 이 일을 왜 하겠다고 덤볐을까.


나도 의아하지만 기분은 좋다.


황금연휴도 이렇게 간다.

그래도 숨 쉬며 사는 것 같아 행복하다.

약으로도 치료 안된다는 근막통증을 제외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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