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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윤서 Jan 30. 2021

자리 배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다시 만난다면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학급 자리배치에 관한 내용인데, 그때를 되돌아보니 학생들의 의견을 수용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셨던 선생님이었다. 모두에게 앉고 싶은 짝꿍 순위 1,2,3위를 설문 조사하고, 서로의 선호도를 고려하여 짝꿍을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구성원 모두의 뜻을 다 수용할 수 없었을 텐데, 이 방법을 선택하신 이유가 참 궁금하다. 내가 좋아하는 1순위 짝꿍과 짝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간혹 내가 좋아하는 1위 짝꿍이 다른 친구와 짝꿍이 되면 묘한 신경전이 펼쳐 지곤 하였다. 어떤 자리에서 누구와 함께 할지를 고민해 보도록 하고, 자리배치를 적절하게 조율해 주는 측면에서 담임선생님의 학급경영 철학이 엿보인다. 옆자리가 얼마나 인생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지 미리 경험하게 하고픈 담임선생님의 열망이었을까? 



“선생님, 우리 자리 언제 바꿔요?”


 한 달에 한번 주기로 교실의 자리배치를 바꾸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시험기간이 돌아오거나 학교 행사로 인해 교실 배치를 달리할 경우가 생길 때에는 자리 변동 주기가 바뀌기 때문에, 자리를 바꾸고 싶어 하는 학생들 문의가 생긴다.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는 학생들은 별말 없지만, 짝꿍과 사이가 별로 안 좋다거나,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옮기고 싶다거나, 자리에 불만이 있는 학생들은 다음번 자리배치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자리는 제비뽑기 방식으로 1~24번까지 숫자가 적힌 종이를 뽑는다. 시력이 안 좋은 사람, 앞에 앉고 싶은 사람은 1~10번까지의 앞자리 숫자를 뽑게 하고 나머지 11~24번은 나중에 뽑는다.  뽑고 나서 보이는 반응에 따라 자리가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자리배치를 마치고 나면 꼭 상처 받는 학생들이 생긴다. 같은 반에 있더라도 교우관계에 따라 한 마디도 섞지 않고 지내는 학생들도 여럿이다. 안타깝지만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다 같은 친구가 될 수 없다. 똑같은 한 달의 시간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만,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너무나 짧고 더 연장하고 싶은 기간일 수도 혹은 악몽 같은 시간일 수도 있다. 원하는 상대와 앉아서 좋아했지만, 막상 함께 지내다 보니 멀어지는 경우도 간혹 생긴다.  원치 않은 상대와 앉았더라도 짝꿍이 된 계기로 친해지게 되거나 여전히 불편한 관계로 한 달을 보내기도 한다. 

제비뽑기 후 자리배치표

 “선생님, 저 너무 괴로워요. 자리 좀 다시 조율해주시면 안 될까요?” 


처음에는 참아보려고 노력했다가 인내심의 한계를 느껴 도움을 청하러 온다. 다른 무엇보다 본인이 직접 상대방에게 말하기 난감한 경우에 해당한다. 흡연하는 학생 옆자리에 앉은 학생의 경우, 담배 냄새 때문에 두통이 너무 심해져서 학습에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씻는 것을 귀찮아해서 몸에서 나는 땀냄새나 입냄새 등이 심해서 곁에 있기가 너무 싫다는 내용이다. 민감한 사항이라 말을 꺼내기가 어렵지만 모두의 불편함을 덜어내기 위해, 함께 하는 공간을 좀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 


 의외로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그 당사자에게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놀랍게도, 주변인들이 느끼는 이런 불편함들에 대해 정작 본인은 심각하게 느끼고 있지 않으며, 심지어 말하기 전까지는 모르고 있다가 그때서야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결정적으로 불편함을 해소하려면 그 당사자가 변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자리를 바꿀 때마다 누구누구의 옆자리는 왜 앉기 싫어하는 자리로 인식되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한 달마다 돌아오는 자리배치는 우리에게 불편함을 되돌아보고 함께 해결하는 반성의 시간인 것이다. 아무도 앉지 않으려 했던 자리에서 방금 막 샤워를 끝낸 비누향기가 난다. 불편함을 덜어낸 자리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는 공동체 의식의 승리다.  


 성인이 된 후 나의 옆자리 , 내 주변 , 나와 함께 할 사람이 점점 명확해진다. 얕고 넓은 인간관계는 점점 좁고 깊어진다. 수많은 실패들 속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이다. 화려함보다 편안함, 똑 부러진 바른말보다는 정감 있는 부드러운 말, 상대를 대하는 몸에 베인 매너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기적을 경험하는 중이니 이 또한 얼마나 큰 행복인가?   


 내 안으로부터의 진정한 '끌림'의 미학을 따라 내 옆자리를 연인에게 내어주었다.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낄 무렵, 뜨거웠던 사랑을 뒤로하고 안타깝지만 관계의 마침표를 찍는다. 기회가 된다면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사랑하는 연인으로 지내는 동안 상대에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점이 좋았고 아쉬운 점은 어떤 부분인지에 관한 것이다. 이 대화가 끝나고 나면 비록, 남이 되어버리겠지만  '나'라는 사람이 갖는 불편함을 확인하는 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성장통이었다. 내 안의 불편함을 없애고 내 옆자리, 내 주변, 나와 함께 하는 이들에게 사람 냄새 가득 품은 방향제로 남고 싶다.  

사진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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