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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윤서 Jan 27. 2021

손 닿을 만큼의 거리

 “방과 후 떡볶이 어때?”

 학생들과 약속을 잡으려면 학원이나 다른 스케줄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영화를 본다거나 간식을 먹는 건 보통 시험이 끝난 마지막 날 이루어진다. 미리 정해 놓은 약속은 왠지 모르게 그날만 되면 몸이 아프거나, 다른 일이 생기거나, 약속을 지키지 못할 상황이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인지, 원래 만나기로 한 사람 모두가 다 약속 장소와 시간에 맞춰서 나타나는 경우가 참 드물다. 종례시간에 미리 약속을 정하는 대신 급번개로 “오늘 떡볶이 먹을 사람?”을 외쳐본다. 외칠 때마다 참가인원은 제각각이다.


 어릴 때부터 학교 앞 떡볶이 가게에서 사 먹던 토마토케첩과 고추장 맛이 묘하게 잘 섞인 그 맛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때의 그 맛을 간직한 떡볶이 가게를 찾지 못하였다. 엄마가 주신 용돈 500~1,000원 주고 사 먹던 그 추억의 맛이 빠져서 일까? 어느새 소소한 취미가 되어버린 지역 떡볶이 맛집을 찾아 헤매 인지 2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 그 시절 추억의 떡볶이 맛은 만나지 못하였다.

 오늘의 떡볶이 급번개는 소수 정예 인원 3명과 함께 했다. 학교 밖을 벗어나면 마치 여고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아이들과 난 하나가 된다. 교실에서 들을 수 없었던 학교 안팎의 소식들이 한가득이다. 누구랑 누가 새로 사귄다느니, 며칠 만에 차였다느니, 남녀 간의 이성문제가 가장 핫한 뉴스로 자리하고, 그다음 연예계 소식, 교우관계, 진로, 학업 등 세대를 대통합하는 수다 삼매경에 시간을 잊은 지 오래다. 떡튀순(떡볶이+튀김+순대) 세트에 어묵 국물까지 흡입한 우리는 다음 급벙개를 기약하며 헤어진다.


 마치지 못한 일이 있어 교무실로 다시 돌아오는데 OO이가 다시 학교 갈 일이 있다며 따라 나온다. 뭔가를 주저하며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말인데 망설이는 것 같아서 조심스레 운을 띄워본다. “혹시, 선생님한테 무슨 할 말 있니?” “네. 선생님, 이제부터 저한테 잘해주지 마세요. 아, 그리고 더 이상 다가오지 마세요” 이유를 물어보기도 전에 급하게 자리를 떠나버려서 대화를 다 마무리하지도 못한 채, 머릿속은 계속해서 마지막 문장이 맴돈다. 잘해주지 마세요. 다가오지 마세요. 잘해주지 마세요. 다가오지 마세요...

 

 그동안 방과 후 급번개 시간을 통해 사제 간의 정을 돈독히 쌓아온 사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처음에는 괘씸하고 화도 나고, 괜한 시간을 마련한 나 자신을 자책했었다. 무언가 마음의 상처가 단단히 생긴 것 같아,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주려 했지만, 그것 또한 상대가 원치 않을 것 같아 기다림의 방법을 택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 이상 다가갈 수 없었다. 이유도 모른 채 학년이 바뀌고 2학년 학기말이 다가올 무렵, OO이가 활짝 웃으며 내 곁에 다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선생님, 요즘 안색이 별로 안 좋으신 것 같아요. 제가 요즘 수지침을 배우는데요, 한번 해 드릴까요?” 1년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밝은 표정과 미소로 내게 다가와 줘서 감사했지만, 그때의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았다. 때로는 묻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이 만나, 온전히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다. 맞잡은 손의 온기에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될 만큼의 사랑이 느껴진다.  손을 내밀면 잡을 수 있는 그곳, 내가 있어야 할 자리다. 내가 베푼 친절이 상대가 원치 않거나 부담일 때에는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멈춰야 한다.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표현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 사랑을 온전히 다 받아들인다는 건 혼자만의 착각이다. 

밀양 여행 중 어느 한 카페에서

 손 내밀면 잡을 수 있는 그곳, 밀양에 가면 언제든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는 두 친구가 있다. 가끔 지칠 때면 한적한 농촌 풍경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번은 이야기에 흠뻑 빠져 서울 올라오는 기차 시간을 놓쳐버릴 때도 있었다. 관계 속에 지쳐있을 때, 우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를 친다. 잘해주다가 소원해지고, 친해졌다가 멀어지는 관계의 반복 속에 상처 입는 것이 두려워 두꺼운 성벽을 치고 그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보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에게서 관계의 실마리를 찾는다. 언제 끝나버릴 줄 몰라 불안해하다가 스스로 먼저 관계를 끊어버리는 방법을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괴로웠을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 근육을 단단히 키워 다시 사랑의 손길을 전달하기까지 성장한 OO 이에게 손 닿을 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는 배려를 배운다. 사람 간의 거리를 배우는 나는 아직도 성장 중이다. 


사진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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