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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 Feb 16. 2020

한 명분 자아의 형성

니콜라 마티외의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을 읽고

아이가 태어날 때, 호수가 출렁인다. 커가는 파문의 반경. 나이테 같기도 하다. 매 시점 더 넓은 면적이 세상과 맞닿는다. 시야의 확장은 뜻밖의 요소가 등장함을 의미한다. 몸이 커지고 아는 사람 수가 는다. 비례하여 진폭이 증가하고, 우리를 모든 방향으로 흔들기 시작한다. 어느 시점부터 급격히 변한다. 더 이상 알던 세계가 아니다.


선의, 순수함과 별개로 돌아가는, 벽처럼 단단한 규칙의 집합.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고 당황스러워한다. 시간이 사건들을 얽고, 예기치 못한 식으로 묶어냄을 목격한다. 영향 미치는 요인 수가 늘어나고, 방식도 미묘하다. 예상하기도, 알아차리기도 힘들다. 통제는 불가능하니, 애초에 꿈꾸지 말 것. 요구되는 것은 '적절하고 바람직한' 사회적 자아 갖추기다.


프랑스 쇠락한 공업도시, 별 볼일 없는 외딴 지역의 그렇고 그런 계층 아이들, 앙토니, 하신, 스테파니, 클레망스의 사춘기 기억이 담겼다. 그들의 시간도 유사하다. 곧 변변찮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고, 앞날이 암울하여 고민이다. 가끔 싸움에도 휘말린다. 울타리였던 부모는 이혼했다. 그나마 가벼웠던 비행, 오토바이 절도가 마약거래로 악화된다. 대학에 간 경우더라도, 사회에 엄존하는 계층의 벽에 부닥치게 된다. 좌절감은 마찬가지다.


왠지 모를 보편성이 담겨 있다. 모르는 새 일어난 감정이입은 나와 그들의 시간이 꽤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92, 4, 6, 8년은 공교롭게도 올림픽과 월드컵이 있던 때. 희미해진 기억을 잡아주는 중요한 지표들이다. 그리고 여러 상표들, 브랜드들, 또 음악들. 실제로 너바나와 건즈 앤 로지스를 좋아했다면 그 시절 배경에 잘 녹아들 수 있다. 떠올리자마자 분위기는 살아난다. 그때의 기분, 다시 느낄 수 있다. 그때 무얼 하고 있었는지, 매개들의 도움으로 생생히 기억나게 된다.


그 시기 2년은 크다. 신체 성장도 그렇지만, 감성의 측면에서 광범위한 변화를 겪는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서다. 앙토니와 스테파니의 만남도 그러하다. '처음'은 대체 불가 강렬한 기억을, 영혼에 진한 흔적으로 새겨놓는다. 두고두고 참고가 될, 프로토타입처럼 되어버린다. 두 사람의 추억은 눈부셨다, 호수에서 닿을 듯 말 듯 아련했던 연결점들이, 폭과 깊이 불문, 그들의 감수성이 크게 자라나도록 했을 것이다. 그려지는 장면들이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 그들의 경험에 동참하는 느낌이었다.


앙토니는 매번 자기도 모르게 스테파니 집 쪽으로 향했다. 이어질 듯 이어지지 못한 애틋했던 사이, 적어도 앙토니에겐 관성이 이끌었던 관계다. 하지만 각 2년에 걸친 변화가 긍정의 여운을 남겼다. 성장은 관성의 극복에서 출발한다. 익숙지 않은 쪽에 시선을 돌릴 용기가 필요하다. 여기에 덧붙여, 세상에 깨질 때 생긴 자아 조각을 수습하며 진행된다. 한 명분 자아의 형성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나의 과거는 어떠했는가. 벌써 20여 년 전이다. 시간이 언제 다 흘러간 건지 모르겠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움찔했던 대목이 몇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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