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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el Feb 25. 2020

사건의 전모

윌리엄 포크너의 ‘압살롬, 압살롬!’을 읽고

아버지의 과거에 얽힌 막장드라마식 설정, 죽고 죽이는 비극으로 끝이 난다. 남북전쟁 당시 미국 남부의 분위기, 특히 흑인에 대한 시선에선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다. 바깥에 배타적이고 변화에 경직된 문화로 대변된다. 경계에 대한 날 선 인식이 날카로운 칼처럼 사정없이 금을 긋는다. 외부인 서트펜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와 흑인 피가 섞이는 일을 극도로 꺼려하던 모습. 


발생한 현상, 그 표면에 시선을 두기보다, 타당한 국소적 구획정리에 더 관심이 있다. 살인을 둘러싼 여러 개의 관점이 몇 번이나 같은 곳을 훑는 것을 본다. 하나의 사건을 날카로움 다른 몇 개의 칼로, 또 다양한 각도로 이리저리 자르며 그 단면을 확인한다. 다양한 형태 - 인물의 독백, 액자 밖의 대화, 사실의 서술 등으로 판을 쌓아 올려 간다. 무엇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 수고가 많이도 들었다. 


시간이 가며 명확해지는 걸 보면, 초반 가득 모호함은 의도된 것이었다. 사실은 무엇도 고정적이지 않았다. 정신없는 상황 묘사 속 몇 이미지만큼은 확실하게 해 놓는데, 예를 들면 서트펜의 사악함. 악귀라는 별칭을 지속적으로 사용한다든지 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결말에 가면, 그조차도 변화한다. 몇십 페이지 전에 다른 방향을 향했던 해석의 화살을 주워 담고 싶어 질 것이다. 서트펜은 그렇게 악인인가. 뒷담화 형식의 대화가 과장한 면이 컸다고도 본다. 제3자가 전해 들은 과거의 일. 왜곡과 오류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다양한 시각이 등장했지만, 결국엔 매듭을 지어야 할 테다. 많은 걸 포괄하는 작업이다. 피, 숙명, 타고남, 피할 수 없는 것들. 이미 결정되어 어쩔 수 없는, 흑인의 피, 남부의 공기, 윗세대에서 맺어진 혈연, 모두를 말이다. 순리라는 것이 세상에는 있고, 극복 어려운 일이 인생에선 일어난다. '압살롬, 압살롬!'의 특징이라면 이렇게 뒤집을 수 없는 근본 요소들과, 뒤집어지는 것, 즉 사건을 대하는 시점의 교차가 독자 마음에 입체감이 형성되도록 한다는 점이다. 


진실은 쉽게 알 수 없다. 같은 사건을 두고 초점 두는 사안에 따라 무게 추 위치가 달라지는 건 당연. 영화 '라쇼몽'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점차 진실의 평형점에 다가간다는 사실은 희망적이었다 하겠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작지 않았다. 독자는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까지 지루한 반복을 버텨야 한다. 오해가 깨질 때의 당혹감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이었다. 여기서 어떤 종류의 교훈을 얻었다면, 독서에만 해당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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