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람 말이신가요?
드디어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를 타보는구나. 가이드는 우리에게 플라스틱 보드 같은 것을 하나씩 쥐어주었다. 무서워하는 S 대신 겁 없는 내가 나섰다.
“이야아아아”
빠른 속도로 미끄러지는 내 몸이 차갑게 내려앉은 공기를 가르고 지나갔다. 시원함, 긴장감, 쾌감 등 여러 감정이 짧은 순간 동안 복합적으로 밀려왔다. 드디어 사하라 사막에서 모래를 타보는구나. 반틈은 금빛이 도는 모래 색깔, 반틈은 투명한 물에 파란색 두 방울 정도 휘휘 섞은 것 같은 하늘 색깔. 물체 대신 온통 색깔이 시야를 한가득 채웠다. 태어나서 사막을 처음 와본 사람이 예상하듯 타는 듯한 햇빛과 습도를 견뎌야 할 거라 생각했는데, 입고 온 회색 긴팔 니트가 딱 적절하다 느껴지는 날씨였다. 적당히 차갑고, 적당히 건조한, 지구 어느 곳에서 만나도 좋을 그런 날씨.
썰매를 타고, 타고, 또 탔다. 중간에 여러 번 썰매가 뒤집히면서 넘어지기도 했지만 즐거움이 증폭될 뿐이었다. 대여섯 번 정도 탔을까. 사진 한 장 남기려고 자켓 주머니의 손을 뻗은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아니었다. 공포감이었다. 주머니 속에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이다.
썰매를 타고 지나온 경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모래 속에 손을 푹푹 집어넣고 휘저었다. 하지만 썰매를 탄 만큼의 시간이 지나도 핸드폰은 온 데 간데없었다. 가이드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같이 찾아보려고 노력해 줬으나, 성과는 없었다. 가이드는 이제 그만 해가 지고 있으니 이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어 여행객들은 숙소가 되어줄 천막에 들어와 짐을 풀러 들어가고 가이드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러 갔다. 큰 마음먹고 사하라 사막까지 온 친구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절망스러운 마음이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에 다 드러났다. 그렇지만 숨길 여유조차 없었다.
저녁이 다 되었으니 먹으러 오라는 가이드 말에 S만 혼자 보냈다. 사막 한 중간에 위치한 캠프에 함께 도달한 8명 남짓의 한국인 일행들이 있었는데, 도저히 그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밥을 먹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혼자 방에 남자 수문을 개방한 댐 마냥 절망이 쏟아져 나왔다. 엄마한테는 뭐라고 하지. 분명 또 혼내겠지. 이미 교환학생 생활 하면서 돈을 많이 써버렸는데 핸드폰은 무슨 돈으로 사지.
눈물이 줄줄 났다. 휴지로는 감당이 안되어서 나중에는 가져온 수건에 얼굴을 묻고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렸다. 사건 이후 시간이 흐르고, 직장인이 되어서 여러 물건을 사보기도 하고, 잃어도 봤다. 그러면서 물건 잃어버리는 것 정도야 번거롭기는 해도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기에 상관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사하라 사막 한 중간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던 23살의 나는,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다시 사야 한다는 문제보다, 핸드폰을 잃어버린 내 못난 모습이 그렇게도 혐오스러웠다. 역시 난 최악이야.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한참을 울고 있는데 S가 천막 문을 빼꼼 열었다.
다른 일행들이 나에게 전해주라며 음식들을 조금씩 챙겨 온 것이다. 곧 별들을 보러 갈 거라고, 인생에서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하라 사막인데 밥 먹고 힘내서 밤에 별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물티슈로 얼굴을 닦아내고, 물 한 모금 마시고, 가져온 음식도 조금 먹고 천막을 나섰다. 식사 장소 근처로 가자 일행들은 가져온 술을 조금씩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막상 이야기를 나누니 또 즐거웠다. 절망도 잘하는 나는 사실 망각도 잘하는 편이라 핸드폰 생각은 잊고 대화에 빠져들었다. J와 T는 함께 인도, 남미 등 오지 지역을 골라서 1년째 여행을 다니는 중이었고, H 역시 여행 경력이 두터운 직장인이었다. B 아저씨는 탄탄한 중소기업을 이끌고 있는 임원이라고 했다.
비워진 술만큼 이야기가 채워졌을 때 즈음 가이드는 돌아다니면서 천막의 불을 하나둘씩 끄기 시작했다. 근처로 가서 별을 볼 시간이라고 했다. 불이 완전히 꺼지고, 캠프에서 100 여 미터 떨어진 곳에 다다랐을 때 짙은 어둠이 시야를 감쌌다. 불을 발견하기 전 태초의 지구는 이러한 모습이었겠구나. 어둠에 시야가 익숙해지고, 하늘의 별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세상에 혼자 남은 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 내 속에 쌓여있는 단어들이 너무도 가난하게 느껴졌다. 보고 있는 광경을 표현할 방법이 ‘아름답다,’ ‘경이롭다’ 정도로 빈곤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 한들, 아주 작고 겸손해질 수 있는 하늘이었다. 행복해서, 슬퍼서 눈물이 관자놀이를 따라 또륵 흘렀다. 방 안에서 혼자 흘리던 눈물과 다른 눈물이었다.
몇 년을 들여다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하늘을 뒤로하고 다시 캠프로 돌아왔을 때, 나와 친구들은 가져온 라면과 캔에 담긴 김치를 일행과 함께 나누기로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에는 많이 가지지 못했어도 가진 것을 다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오랜 기간 한국을 떠나 있던 일행들은 사막에서 먹는 컵라면과 김치에 넘치게 행복해하고, 고마워했다.
그러자 가장 연장자인 B 아저씨가 일행들을 설득했다.
“왠지 아까 헤집으면서 핸드폰이 모래 언덕 아래로 쓸려내려왔을 수도 있어요. 학생들한테 고마우니까 내일 한 번 다 같이 찾아봅시다. 어때요?”
다른 분들도 ‘그래요’ ‘그렇게 해요’ 하며 하나둘씩 적극적으로 동의를 해줬다. 이 광활한 사막 언덕에서 찾을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 손사래를 치며 거절을 했지만 그들은 단호했다. 지금은 별과 술과 컵라면에 취해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속으로 큰 기대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사막 모래가 옅은 남색으로 물든 새벽 아침, 그들은 약속대로 사막 언덕 아래 일렬로 모였다. 그리고 B 아저씨의 리드에 맞춰 무릎을 꿇고 모래 속으로 손을 헤집기 시작했다. 사막의 새벽 아침 모래는 밤 사이에 냉장고에 넣어두기라도 한 것처럼 차가웠다. 안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배가 되었다.
“진짜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정말 너무 죄송해서…”
“찾았어요! 대박!”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어제 본 밤하늘의 별보다 더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핸드폰을 찾아주겠다고 나섰던 B 아저씨가 들어 올린 손에는 정말로 어제 잃어버린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상체를 90도로 숙이며 거듭 감사 인사를 드렸다. 이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감사합니다’ 밖에 없다는 사실이 개탄스러울 뿐이었다.
몇 년이 지나서도 누군가 인생 여행지를 묻는다면 어김없이 사하라 사막을 이야기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금빛 모래와 굴곡진 지평선. 그리고 모래만큼이나 밀도 있던 별과 은하수. 그리고 덧 붙인다.
“근데 그것보다 더 아름다웠던 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