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위의 그녀
평생을 약속한지 한 달. 하고 반이 지났다.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지나 연인이 된지 5주년이 되었고, 부부로 맞이한 첫 크리스마스를 막 보낸 참이다.
아내는 지금 옆에서 아직도 한 달 반? 하며 놀라고 있지만 어느정도 나도 공감가는 반응이다. 결혼생활 1년은 된 것 같은데, 그만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서로로 가득가득 채우고 있다는 뜻은 아닐지.
아내는 내 선배로 시작해서 여자친구를 지나 지금은 체감상 아내와 여자친구 그 사이 어디쯤에 위치해있는 것 같지만 공식적인 호칭은 내 ‘아내’ 다.
아내(阿內). 언덕 안에. 어원을 유추해보면 먼 옛날엔 언덕 위에 집을 지어 침입자로부터 가족을 보호했을 것이고, 그 집 안에는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나를 맞이해주는 그녀. 바로 아내가 있었을 것이다.
딱 그런 마음이었다. 선배라는 호칭을 허물고 내 마음에 점차 스며들었을 때에 그녀를 생각했던 순간의 감정들. 평범하지만 단란하면서도 화목한 가정을 그녀와 함께라면 이룰 수도 있겠다 싶은 무수한 몽상의 파편들이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 흩뿌려져 있다.
내가 감정의 파고로 스스로 괴로워하며 밤길을 산책하다 헤매고 들어와도 언덕 위 우리집에서 언제든 해맑게 나를 맞이해줄 것만 같은 그런 사람.
그렇게 그녀는 내 아내가 됐다.
자, 이제 설거지를 하러 가볼까?
본 시리즈는 아내의 검수를 일체 받지 않기로 사전 협의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