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수도에서 백년해로
신정, 신행, 새해 쓰리콤보를 맞아 장모님을 모시고 경주에 다녀왔다. (운전 못하는 사위라 장모님께 많은 신세를 졌..)
사실, 지금껏 살면서 새해 첫날부터 어딘가로 떠나본 기억은 없다. 이미 출발만으로 임인년(壬寅年)을 새로운 경험으로 여는 뜻깊은 일이 됐다고 할 수 있었다.
어흥.
경주 여행기가 아닌 신혼일기이기 때문에 천년의 수도 경주라는 도시의 고귀함 보다 백년손님 사위의 입장에서 느낀점을 얘기하자면, 구김살 없이 맑고 밝은 아내의 퓨어함(그 Pure 맞다)의 근원을 찾은 것만으로도 큰 수확인 신행이었다.
장모님과의 경주 여행을 통해 아내의 맑고 밝음과 오버랩 되는 찰나의 순간들이 마음 속에 새겨졌고, 잊고있었던 사유를 곁들인 산책이 주는 즐거움을 장모님과 아내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아내와 나는 연애시절부터 서로 기질(氣質)이 비슷하다고 느껴 일종의 편안함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기질(氣質). 자극에 대한 민감성이나 특정한 유형의 정서적 반응을 보여 주는 개인의 성격적 소질.
여행을 하다보면 모르고 있던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옆사람 어깨를 톡톡치며 깨달은 바를 바로 나누거나, 특정 장면을 보고 동시에 같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웃음이 새어나올 때가 있는데, 이처럼 함께하는 여행만큼 서로의 기질을 잘 느낄 수 있는 행위가 있을까?
그 타고난다는 기질이 사실은 물려받은 것임을 눈앞에서 직접 확인하는 일이란 생각보다도 더 커다란 행복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나는 특정한 순간들이 좋음을 넘어 정말 좋게 느껴질때, 좋다는 말보다 ‘충만하다’ 라는 말로 대신하는 습관이 있는데, 아무래도 장모님은 성당에서나 들을 법한 단어라며 내 여행소감에 대한 표현을 많이 쑥스러워하셨다. (좋으셨던 거 맞죠 장모님..?)
새해를 아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타고난 기질의 뿌리를 발견하는 일로 시작했다는건 백년해로의 출발점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 충분했고, 그 여행지가 다름아닌 천년수도 경주였기에 더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천년에 비하면 우리가 함께하기로 한 백년은 행복만 하기에도 너무나 짧은 시간이지 않을까?
그치 여보? .. 여보..? ..벌써 자..?
본 시리즈는 아내의 검수를 일체 받지 않기로 사전 협의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