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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Mar 04. 2022

아이가 집에 돌아와 펑펑 울었다

다시 1학년 엄마가 되어

 둘째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다. 교복이라고 사서 입혔더니 셔츠 소매는 세 번이나 걷어야 했고 체육복 바지 밑단은 두 번 접어 올려야 했다. 가장 작은 사이즌데도 그랬다. 입학식 날, 미리 사둔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걷고는 있으나 가방이 너무 커서 잘 못 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색했다. 비단 키가 작아서만은 아니겠지. 엄마인 내가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는지도 모른다. 둘 밖에 안되지만 투박한 사내아이가 첫째여서 그런지 막내는 계속 애기처럼 느껴졌다. 작아서 더 소중한 건 아니지만 어딘지 계속 안쓰럽고 불안한 마음인 걸 어쩌랴.


 영어 학원에 보낸 건 3년쯤 되었다. 학업의 성취보다는 즐거운 학교 생활에 목적을 두었으나 결국 공부의 보람이 학교 생활과 크게 빗나가지 않음을 큰 아이 때 절감한 터라 끝내 학원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염두에 둔 것은 단 하나, 선생님의 친절이었다. 소리를 크게 내는 것, 단호함을 빙자해 학생을 윽박지르는 것 같은 선생님만 아니면 아이도 영어에 흥미를 가지고 쭉 이어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아이는 정말 즐겁게 학원을 다녔다. 숙제도 적었고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어떤 날은 다른 친구 누구네 학원은 단어를 백개씩 외운다더라 하며 자기가 다니는 학원에 대단히 만족해했다. 사실 단어가 엄청 중요해서 지금 많이 외워둬야 한다고 말해주긴 했지만 아이는 잘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이를 믿기보다는 '그래, 네가 만족한다면 그걸로 됐어'라는 마음으로 방치하고 있었다. 믿음과 방심은 같은 모양 다른 이름으로 내게 머물렀다.         


 중학교에 가니까 영어 학원을 옮기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절대적으로 "No!"를 외쳤다. 초등학교는 집에서 좀 멀었는데 이사 후 전학 없이 아침마다 차로 등교를 시켜주며 1년을 버텼고 이제 졸업을 했으니 굳이 그리로 다니지 말고 집 근처나 배정받은 중학교 근처로 옮기는 게 수월하겠거니 싶었다. 계속 싫다고 해서 아이의 반대를 꺾지 않고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입학 직전, 친한 친구도 다른 학원으로 옮겨갔다. 그러자 아이는 스스로 이젠 학원을 옮기자고 말했다. 그 결정에 '네가 옳다, 잘 결정했다'치켜세우며 데리고 등록 전 상담을 했다.


 이번에 내가 학원을 고른 기준은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같은 아파트에서 가정집과 겸하는 공부방이었는데 클래스 수업도 있지만 1:1로 부족한 부분을 잡는데 주력하는 요일도 따로 있다고 했다. 마음에 들었다. 이전 학원에 비해서 단호하고 자신감 있게 말하는 것도, 마치 시범수업을 하듯 질문으로 테스트하는 방식도 믿음직스러웠다. 중1은 자유학기제라 시험이 없지만 2, 3학년 시험 대비에 맞춰 시험공부 연습을 시킨다고 했다. 방법도 체계적인 데다가 전에 없던 가성비 생각이 스치며 '바로 여기 구나'를 외쳤다. 잘 구했다며 들떠서 돌아왔다. 아는 대로 적어보라고 뜻만 적힌 테스트 용지를 받고서 100개 중에 다섯 개도 못 적는 아이를 보며 잠시 울적했던 마음도 선생님의 한마디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어머니, 보미 성적 오를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같이 해 나가면 됩니다.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불편한 심기를 마구 드러냈다. 갑자기 이전 학원을 그냥 다닐까 어쩔까 했다. 나는 잘할 수 있다고 출썩거리다가 3년 동안 팡팡 논 결과가 이렇다,그래도 좀 힘들겠지만 적응해보자 입찬소릴 남겼다. 아이는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층 침대에 기어올랐다. 침대를 산 이래로 가장 어두운 표정이었다.


 다음날 오후에 으레 그 커다란 가방을 메고 돌아온 아이는 간식을 먹고 학원에 갔다. 한 시간 반 수업이니 하고 오면 저녁 맛있는 거 차려 두겠노라 약속했다. 그런데 두 시간이 다 되도록 오질 않았다. 전화를 거니 아직 안 끝났다고 한다. 사실 좀 초조했다. 첫날인데 왜 두 시간이나 할까, 적응할 시간 좀 주지. 혼자 중얼댔다. 그리고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엉엉 우는 목소리가 현관을 박차고 들이닥쳤다.


 딸아이는 제법 올라온 여드름 때문에 울긋불긋한 얼굴이 새빨갛도록 엉엉 울었다. 왜 우는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기에 냉큼 안아주었다. 안 갈 거야, 다시는 안 가. 한 시간 반 수업이라며, 선생님 이상해 등등. 폭포같이 쏟아지는 한탄에 해줄 말이 없어서 끌어안은 채 소파에 앉아 등을 쓸고 또 쓸어주었다.


 미안했다. 너무 어렵게 만든 게 마치 나인 것 같아서 속이 상했다. 처음부터 단호하게 옮겨 버릴 걸. 어차피 평생, '너의 행복을 위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해주지 못할 바엔 조금 더 신경 써서 공부시킬걸 그랬다며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으앙, 소리를 내며 우는 딸이 귀여워서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사실 속이 좀 시끄러웠다. 아이가 오기 전까지는 배가 고팠는데 이후엔 오히려 뭘 먹고 잔뜩 체한 듯 메슥거렸다.


 이미  했지만 아이가 너무 싫다고 하니 환불해달라고 할까? 아니지, 아이를 위한답시고 불편한 분위기를 내가  참는  아닐까? 이제 중학교에 가면 초등학교 하고는 분위기도 다르고 결국  나라에서 학생으로 살아가려면 공부하고는 담쌓고는  사는데 지금  어려워도 이겨내게 도와주는    일이지.

 별별 생각을 다하며 십분 넘게 아이를 안고 눈물을 닦고 등을 쓸었다. 아이는 울고 있어 봤자 짜증만 나고 별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내 품을 떠나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갔다. 고민 끝에 결국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아이가 펑펑 울면서 집에 왔습니다. 부족한 점은 제가 집에서 도와주며 차근차근해 나갈 테니 이달만이라도 적응 기간을 좀 주시면 어떨까요? 두 시간은 아이가 힘들어하니 한 시간 반 정도만 수업하고 보내주시면 못한 부분이나 과제는 최대한 해서 보내겠습니다.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예전에 과외 교습을 할 때 학부모가 수업 방식에 대해서 이런 류의 문자를 보내면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학원이 편안하고 재밌기만 한 곳이 있는가. 공부와 관련된 곳이라면 더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 중에 공부하고 싶다고 손 번쩍 드는 아이가 얼마나 되는가. 엄마가 나약해서 애 하나 못 이기고 쩔쩔매다가 나름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한테 문자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유쾌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음을 상기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젠 내가 이 지경이 되었다. 그때 그렇게 문자를 보내던 부모들도 나처럼 고심해서 문장을 완성했겠지, 작은 글자 버튼을 꾹꾹 누르며 행여 무례해 보일까 내용을 점검했을 거야. 쓴웃음이 났다. 결국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한숨을 쉬며 뿌린 대로 거둔다는 비약에까지 이르렀다.


 한참만에 나온 아이는 배가 고픈지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아마도 엄마 품에 안겨 한바탕 울고, 친구랑 통화를 하고 나니 조금 진정이 된 모양이다. 저녁을 먹이고 씻겨서 독서고 뭐고 때려치우고 붙어 앉아서 숙제를 거들었다. 거든다고 해봤자 오늘 풀고 채점받은 걸 넘겨보며, '우리 보미 고생 많이 했네. 엄청 많이 풀었네. 이 단어는 어려운데 용케 맞췄네' 출썩거리는 것뿐이었지만 아이는 인정받는 기분인지 아까만큼 부정적이지 않았다. 안 간다고 방방 뛰더니 결국 숙제도 가지고 나왔지 않은가.


엄마, 하윤이 옮긴 영어학원은 9시에 끝난대.
일요일도 가야 하고, 오늘도 단어 50개 외우고 집에 왔대.
내가 나은 거래.


 비(Be) 동사의 세 가지 뜻을 반복해서 체크하던 아이가 문제집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엄마, 나 힘들었지만 다시 한번 해볼게'를 돌려서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웃었다. "그래, 너도 할 수 있어. 거기보다 여기가 낫네. 하윤이랑 너랑 이때까지 케이 학원에서 신나게 놀면서 영어랑 친해졌으니 이제 이 학원에서 또 적응 잘해보자" 다독거렸다. "엄마, 조용히 해봐. 나 이거 풀어야 해" 라며 귀엽게 앙탈을 부리는 아이를 보며 비로소 한시름 놓았다.


 지금쯤 2층 침대에서 잘 자고 있겠지. 아직도 침대 밑 벙커엔 장난감이 즐비한 꼬마 아가씨지만 곧 중학생에게 더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해가겠지. 어느새 삼 년은 또 훌쩍 지나 제 오빠처럼 불쑥 고등학생이 돼서 나타날 것이다. 아이는 달라진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사실은 나야말로 적응이 좀 필요하다. 누군가는 섣부르게 '공부가 다가 아니다, 크면 다 알아서 한다, 애가 싫다는데 그만두게 해라'말할지도 모르지만 대한민국에서 중학생 엄마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공부하는 방법을 익히는 건 꼭 학교 공부가 아니어도 가능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시험을 대비해야 한다. 그 괴리에서 우왕좌왕하지 않는 유연하지만 정확한 태도가 내게 필요하다. 그래도 가능한 아이의 마음을 만지며 같이 나아가야지.

 아직도 엄마는 힘들다. 초등학교를 졸업해도 육아는 끝나지 않았다. 육아에는 왕도가 없다지만 누가 나에게 중도라도 좀 가르쳐주면 좋겠다. 나는 다시 일 학년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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