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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영 Dec 14. 2022

최지영의 연극놀이 이야기

극적 행위, 왜 중요한가 ②

극적 행위, 왜 중요한가 ②

: 극적 경험을 통한 이성과 감성의 통합     


  연극놀이 이끔이가 끌어내는 극적 행위는 크게 두 가지 영역에서 운영될 수 있다. 하나는 참여자들의 몰입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이자 환경으로써 제공되는 극적 행위이다. 참여자들과 함께 탐구하고자 하는 다양한 소재, 주제, 이슈에 다가가기 위한 통로이자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때 이끔이는 참여자들의 몰입을 위해 사건, 장면, 인물에 대한 극적 행위를 만들어보는데, 그것은 재미있는 행위이자 동시에 하나의 정보로서 기능하게 된다. 

  또 하나는 참여자들이 드라마의 과정 자체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다. 움직이고, 소리 내고, 여러 명이 모였다 흩어지고, 음악에 맞추어 움직이고, 움직임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움직임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내는 등, 그 안에서 발산하고 발화하고 반응하도록 한다. 개인적인 행위와 모둠이 함께 하는 행위가 모두 포함된다.      


  “이처럼 극적 행위는 참여자들에게 공급되어, 참여자들의 경험을 끌어내는 매체이자, 환경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고, 참여자들이 실제로 개입하고 완성하고 창조하는 영역이 되기도 한다.”(필자, 교육연극에서 이성과 감성의 통합을 끌어내는 극적 행위의 촉발과정 연구, 2020)     


  연극을 포함한 예술의 세계가 참여자(혹은 학습자)들에게 경험을 끌어내는 매체이자 동시에 개입하고 표현하는 영역이라는 것, 곧 극적 행위를 통해 예술이 가지는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찾기 시작하는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물론 이러한 고민은 인간에게 태생적으로 내재하여 있는 것이지만, 정작 사회 안에서 예술의 힘을 체계화하고, 인간들의 일상에 적용하고자 한 최초의 시도는 ‘플라톤’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거 아닐까?     


  고대 그리스 사회, 특히 아테네의 교육을 살펴보면, 크게 다음의 세 가지 활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Courtney, Play, Drama, & Thought, 1989)     

  첫째, 신체적인 놀이, 경주, 게임, 무용

  둘째, 플롯, 수금과 같은 악기 연주

  셋째, 몸짓, 표정, 소리 등 다양한 요소를 사용하여 시를 읽고 쓰고 암송하기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세 가지 모두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예술 활동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은 직관과 체험을 통해 영감을 일으키는 미적 경험이 필요하다고 인식한 최초의 행정가이자 철학자이지 싶다. 이점은 정말 탁월하지 않은가!     


  플라톤은 이상 국가의 실현을 위해 바람직한 시민상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시민들을 육성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인식은 예술을 비롯한 모든 학문적 관심을 인격의 성장에 두어야 한다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했다. 곧 ‘인격의 성장이나 이성적 판단을 위해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플라톤은 모든 만물을 초월하는 진리의 세계인 ‘이데아’의 가치를 최고로 인정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는 현실은 이데아의 모방이라 했고, 예술은 삶의 모방이기 때문에, 최고의 선이자 진실인 이데아에서 그만큼 떨어져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것은 플라톤만의 인식이었을까?   그 당시 그리스인들에게는 예술의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용어로 ‘테크네(techne)’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말은 라틴어 아르(ars)에 해당하며 영어 아크(art)의 어원이기도 하다. 우리가 쉽게 ‘기술’이라고 칭하는 이 용어의 기원은 온갖 종류의 만들기, 여기서 만들기란 물리적인 기계조작과 같은 만들기로부터 추상적인 예술 행위인 조각, 회화, 연극에서의 장면만들기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플라톤을 비롯한 그 당시 그리스인들의 이러한 관점은 교육 전반에 대한 지향점이자, 동시에 교육연극의 하나의 뿌리- 교육을 위해 연극을 활용한다는- 방향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어찌보면 교육연극의 발전은 이 논제에 대한 반향과 비판으로 지속해오고 있는 것이리라) 곧 예술이란 그 자체로서의 가치보다는 이상 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도구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모방을 곧 ‘예술하기’로 인식하면서 좋은 모방과 나쁜 모방이 있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국가의 자유를 수호하는 일 이외에 다른 것을 모방하려고 해서는 안되지. 만일 그들에게(시인들에게) 모방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들의 직분에 적합한 것들, 즉 용기나 절제 같은 덕목에 한해서 이루어져야 하지.”(플라톤의 국가론, 이환 편역, 2014)     


  실제로 플라톤은 시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고 했는데, 그것은 오히려 예술이 가지는 인식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있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시민들이 예술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갖기보다는 국가에서 제시하는 시민의 역량을 벗어나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 한 거 아닐까?     


  예술, 특히 극적 행위에 대한 플라톤의 시각에 대해서 연극이 가지는 힘과 예술을 통한 참여자들의 자발성 창출에 대해서 한계성을 가지고 접근했다는 평가도 있다.      

  “플라톤이 드라마의 위험성을 과대평가했고, 드라마의 힘을 너무 협소하게 평가했으며, 실제와 허구, 환상 사이의 관계를 넘나드는 드라마의 핵심적 요소를 놓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John O’Toole, 2009)     


  플라톤에 대한 이러한 평가와 플라톤의 관점을 모두 총체적으로 수용해볼 때, 예술의 영역에는 감성적인 발화와 함께 예술을 통한 이성적 판단이라는 부분이 모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극적 행위는 모방이라는 표현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동시에 인간의 행위를 전달하고 사고하는 중요한 매개체임을 정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에 대한 관점은 어쩌면 인간을 바라보는, 교육을 바라보는 인간들의 사고체계에 의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표출될 수도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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