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태도가 되는 삶
유난히 바쁜 날이면 별 일 아닌 일에도 감정이 요동을 친다. 뭐 하나 걸리기만 해봐 하고 눈을 부라리고 두리번거리다가는 별 수 없이 일에 등을 떠밀린다. 지난주는 유달리 그런 날들이 많았다.
근무하고 있는 학교가 올해 수능 시험장교로 지정되었고, 담임은 교실을 일주일 내에 수능 고사장으로 바꿔야 했다. 책상 배치며 낙서 제거, 게시물 부착을 하다 말고는 짜증이 나서는 어지럽혀진 교실을 나와 버렸다.
<ooo님으로부터 부재중 전화 2통>
겨우 한 숨 돌리려고 책상에 앉아 핸드폰 화면에 남겨진 부재중 전화 알림을 본다. ‘부재중 전화 두 통’. 우리 부부는 어지간하면 전화를 한 번에 두 번 이상 걸지 않는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으레 바쁜 일이 있나 보나 하고 메시지를 남기곤 하는데, 두 번의 통화 시도는 필시 급한 일이 있다는 뜻 이리라.
<여보세요? 무슨 일 있어?>
<여보 유건이가 레고 빠방이 가져 놀아도 되냐는데?>
<아, 그거 조립하는데 다섯 시간도 넘게 걸린 거 알잖아. 애가 가지고 놀다 망가지면 다시 조립해야 된다고...>
<알았어. 미안해.>
네 살짜리 조카아이가 집에 놀러 왔나 보다. 다른 장난감들보다 유달리 자동차를 가지고 놀기를 좋아해서 몇 번 장난감 자동차를 사주곤 했었는데, 오늘따라 현관 앞 진열장 안에 있는 조립 자동차가 눈에 띄었나 보다. 평소 같으면 그러려니 할 일이었는데, 그날따라 짜증이 낫던 터였다. 내가 바쁜 게 아내와 조카 때문도 아닌데 덜컥 와이프에게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망가지니까 절대로 가지고 놀면 안 된다는 으름장을 놓고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전화를 끊고서 책상에 앉아 괜스레 미안했다. 조카 애랑 놀아줄 거리가 있어 즐거웠을 와이프한테도, 쌀쌀 맞고 변덕스러운 이모부를 가진 아이한테도.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했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망가져도 괜찮다고, 다시 조립하면 되니까 꺼내서 조카 놀게 꺼내 주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모부 왔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강아지 마냥 달려오는 조카를 끌어안았다. 이렇게나 이쁜 아이한테 뭐하러 짜증을 냈나 싶었다. 와이프와 처제 말로는, 행여 차가 망가질까, 부품 하나가 떨어질까 조마조마하면서 장난감을 가져 놀았단다. 피식 웃음이 나 괜히 장난을 더 걸고 싶어 졌다.
<우와. 유건이 이모부가 제일 아끼는 장난감이랑 놀았어?>
<응! 유건이가 이거 엄청 조심히 가져 놀았어.>
<어? 여기 망가졌다!>
가지고 놀던 자동차를 이리저리 살피다 아이 몰래 슬쩍 바퀴 하나를 빼버렸다.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아이의 얼굴에 가득 차는 것을 보고는, 자동차 의자도 빼버리고 트렁크도 떼 버렸다.
<이거 아까는 괜찮았는데.... 유건이가 고쳐줄게.>
입이 툭 튀어나와서는 레고와 끙끙 씨름을 하는 아이를 보니 웃음이 새어 나오다가도, 여전히 기분이 태도가 되고 있구나 싶어 부끄럽다.
<괜찮아. 이거 유건이 가고 나서 다시 고치면 돼. 막 가지고 놀자!>
<안돼. 이거 유건이가 엄청 조심히 가지고 놀았단 말이야.>
<에잇, 이모부가 다 부셔버려야지!>
토요일 아침, 모처럼 일찍 일어나 자동차를 분해했다. 하나하나 분해하고 다시 조립. 다섯 시간 정도 걸려 완성했다. 블록 하나하나가 짜임새 있게 맞물려 자동차가 되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흐트러졌던 내 기분도 정돈된 느낌이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짜증을 그렇게 냈나 싶다.
레고를 현관 앞 장식장에 넣었다. 문을 열면 바로 볼 수 있게. 언제든 꺼내서 가져 놀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