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어머니라 부르는 게 무례한 일이 되어 버린 나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심해야 할 것들이 늘어간다. 조심성 없는 행동에는 직접적인 꾸중보다 은근한 멸시가 뒤따른다. ‘꾸중’은 알지 못한 것에 대한 주의라 할 수 있지만 ‘멸시’는 누군가의 인식과 행동이 부조화를 보일 때 주는 비난이다. 나는 항상 꾸중을 통해 멸시받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한 매너를 갖추고 싶었다. 어떤 것들은 보편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질책을 불러일으키고, 그때마다 변명하지 않고 배워나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간혹 소수의 사람들로부터 예상치도 못한 비판을 받는 경우, 결정 장애로 인한 방향성 상실 때문에 머리가 지끈 거리기도 한다.
점심시간 교내 식당에 길게 줄이 늘어져 있었다. 학생들이 있었다면 4교시와 점심시간으로 인원이 좀 나뉘었을 텐데, 온라인 등교 기간 모든 교직원들은 11시 50분에 정확히 식당으로 모여든다. 그 날의 메뉴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짜장면, 짬뽕, 군만두, 단무지, 귤’
내 차례가 다다를 때 즈음, 뱃속 가득 찬 허기에 괴로움을 느낀다.. 괜히 앞에 서 있는 선배의 등을 식판으로 쿡쿡 찌르고 싶은 마음을 눌러 댄다. ‘1미터 거리 두기’는 나를 식탐에 눈이 멀어 버린 교양 없는 인간이라는 비난에서 구해줬다. 드디어 내 차례. 음식들을 식판에 담아 가며 나아가는데, 면이 들어 있어야 할 통이 비어 있었다. 음식을 조리하시는 분들이 계신 곳에다 대고 소리쳤다. 아니, 부드럽게 말했던 것 같다.
<어머니, 여기 면이 부족합니다.>
조리실의 뿌연 김 사이에서 이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신 조리사 한 분이 면이 담겨있는 통을 들고 나오신다. 갓 삶아진 면을 통에다 가득 담아 주시고, 이내 식판은 따뜻한 면으로 가득 찼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기분으로 자리에 앉아 짜장에 면을 슥슥 비비는데 한 선생님이 말을 건넨다.
<선생님, 아까 왜 어머니라 그랬어?>
<네? 그냥 아주머니라고 부르긴 좀 그래서...>
<아냐. 그럴 때는 여사님이라고 해야지. 우리 같은 나이 때 사람들이 호칭에 얼마나 민감한데.>
<아, 그런가요? 하긴 저희 어머니 연배는 아니신 것 같기도 하네요. 하하.>
민망함과 당황스러움에 웃어대기는 했지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름 예의를 갖춘답시고 선택한 단어가 상대를 언짢게 할 수도 있구나. ‘어머니’라 부르기에 새삼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구나...
식당을 하셨던 어머니의 가게에서 시간을 보냈을 때가 많았던 어린 시절, 우리 어머니의 이름은 가짓수가 많았다. ‘아줌마, 아주머니, 이모, 사장님, 어머니, 저기요, 여기요, 등등.’ 친근한 이름으로 불린 어머니와 그렇지 않은 이름의 어머니는 반찬을 담아내는 손의 크기가 달랐다. 이모나 어머니라고 불렸을 때 손님들은 사장님이 되었고, 아줌마나 여기요라 불렀던 사장님들은 손님이 되곤 했다.
20대가 되고 식당에서 사장님을 부를 때면 나는 어머니, 삼촌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부산에서 갓 올라온 청년이 사투리 억양이 잔뜩 섞인 말투로 그들을 부르면 종종 음료 서비스를 받기도 했다. 나는 예의 바르고 친근한 손님이다라며, 다른 친구들에게 어머니나 삼촌 같은 호칭을 사용하도록 강요했었다.
<생각해봐. 다들 우리 부모님이라고 생각을 하라고.>
의기양양했던, 효심과 매너로 가득 찬 젊은 시절이었다.
나름 호칭에 대한 매너는 확실하게 잡혀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많이 흘러 30대가 되었고,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부르기 전에 멈칫한 적이 없었다. 남자는 ‘삼촌’, 여자는 ‘어머니’. 마법을 부르는 주문과도 같은 이 명료한 호칭들. 이로써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손님이 될 수 있었는데...
조리사 아주머니의 붉게 상기된 얼굴은 주방의 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날의 대화를 계기로 어쩌면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여사님’이라는 말도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결정 장애다.
누군가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예의가 아닌 나이에는 새로운 매너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