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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영어 교사 Oct 09. 2020

다름을 맞이하기

다르면 다를수록(최재천)을 읽고

"창의성의 꽃은 혼돈의 풀밭에서 피어난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내 전문성은 영어라는 교과목을 얼마나 잘 가르치느냐로 판단되며,

인생을 조금 더 산 경험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들이 때로는 나처럼, 또 때로는 나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라며 매일을 보낸다.


'학교'라는 공간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비슷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네모난 건물 안에 빽빽한 교실

복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삭막한 교무실

흙먼지를 털어내고 줄을 서던 급식실과

졸업 후 왠지 모르게 동네 초등학교 안을 기웃거리면서 추억에 참기는 곳.

지금도 여전한 현장에서 이제 나는 아이들을 가르친다.




지구 표면의 일부나 전부의 상태를 가리키는 기호나 평면을 이용해서 실제보다 축소된 평면에 나타낸 것을 지도(地圖)라고 한다.

어떤 방향으로 남을 가르쳐 이끄는 것 또한 지도(指導)라고 한다.

그리고 남을 이끌어 지도(指導) 해 나가기 위한 교육 정책상의 지도(地圖)가 존재한다.

지도(地圖)에는 교사에게 아이들을 지도(指導)해야 할 방향과 위치, 지름길과 숨겨놓을 곳이 표시되어 있다.




1984년 출생 후 6차 교육과정 속에서 공부하고 자라난 나는

7차 개정 교육과정 속에서 공부하는 2003년생 아이들의 담임교사이다.

거의 20년의 터울을 두고 매일 살을 부딪히며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려 분투하지만

어느 한쪽이든 다른 쪽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해가 안 되면 화가 난다.

"왜 너는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거지?"

"왜 선생님은 그런 식으로 말하세요?"


시간이 많이 흘러 사회가 변화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의 아이들은 나와 비슷한 세대와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다.

보다 자유롭고 보다 긍정적이며 보다 직접적으로 살아간다.

언제나 한 발 앞서 사고하고 전혀 뜻밖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는 그것을 서로 공유한다.

바른 자세로 생각하고 선배들의 지혜를 습득하고 암기했던 내가 아니다.

둘은 어디가 맞고 틀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나,

언제나 우리 학교는 후자를 선호하고 열과 성을 다해 지지한다.


여전히

학교라는 곳은 아이들을 통제하고 정해진 틀에 맞춰 상품으로 출시하며

효율적인 컨베이어 벨트로 기능하고 있다.

"2020년 서울대 20명 입학"

훌륭한 공장 앞에는 화려한 현수막이 내걸린다.

출시된 상품들이 야심 차게 사회라는 시장에 나갈 때

불량품 딱지가 붙은 것들은 상품이란 이름을 얻지 못해 당황한다.

나도 충분히 쓸 만은 한데 왜?

의구심은 넣어 두고 스스로 자책하며 무대 뒤로 돌아 나간다.




우연히 최재천 작가의 '다르면 다를수록'이라는 책을 읽으며

다양한 종들의 존재야말로 자연 생태계를 존재하게 하는 이유라는 문장에서 씁쓸함을 느꼈다.

순수를 혐오하고 다양성의 혼돈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자연 생태계에서는

하나의 우월한 유전자만 살아남은 종은 단 하나의 전염병에 의해 전멸될 수 있다고 한다.

종이 가진 다양성은 특정 바이러스와 균에 강한 개체들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거듭되는 위기 속에서도 전체 집단의 안전이 유지될 수 있다.


우리 교육은 어떤가.

여전히 바람직한 인간상이 변함없이 존재하고,

통제되지 않는 다양성은 과오라고 지적하며 교정하는데 열중한다.

복장과 예절 속에 아이들을 가두고

쓸 데 없이 타이트한 국영수라는 옷을 입혀 시험이란 런웨이에서 판단한다.

걔 중엔 미술이란 모자가 어울리기도 하고

음악이란 액세서리를 훌륭하게 소화하는 모델들이 있음에도 애써 무시해버린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은 혁신이라는 바이러스에 잘 적응하고 헤쳐나갈 수 있을까?


출근하면서 다짐한다.

"창의성의 꽃은 혼돈의 풀밭에서 피어난다."

서로 다름은 고쳐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아름다운 본보기이다.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다면 학교라는 공간에서 만날 이유가 없고,

만남은 배움이라는 화학반응을 언제나 일으킨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매일 아이들에게 배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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