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영어 교사 Oct 15. 2020

선생님 오늘따라 왜 이러세요?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by 레몬 심리)를 읽고

예전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는 HOT라고 불리던 다섯 분의 선생님이 계셨다. 각기 영어와 국어, 프랑스어와 수학, 지리를 가르치셨던 다섯은 우리들이 안전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반드시 조심해야 할 경계 대상이 되었다. 이런 명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들은 고등학교 3년을 지배했다.

당시에는 체벌이 허용되었던 터라 잘못한 일에 대해서 몇 대 맞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부모님 호출이나 화장실 청소에 비해 체벌은 오히려 깔끔하게 내 죄가 씻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린 우리에게 정말 힘들었던 건, 도대체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되는지를 몰랐던 것에 있었다.


하루는 교복 넥타이가 사라져 가슴 졸이며 교실 정문을 통과했던 날, 악명 높은 HOT 선생님 중 한 분이 교문 등교 지도를 하고 계셨다.
‘아 오늘도 무진장 쥐어 터지겠구먼.’
선생님께서 미처 눈치 채지 못하기를. 내 앞에 다른 누군가가 걸린 틈에 교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만 있다면...
신을 믿지 않는 나는 언제나 나의 위기마다 신께 의지하고는 했다. 그리고 내 기도 덕분인가, 나는 교문을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그 선생님이 나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정확히 5초 정도 눈이 마주쳤고, 내게 웃으며 아침 인사까지 했으니까. 이래서 종교, 종교 하는구먼.

또 하루는 그날따라 버스에 사람이 많아 이리저리 부대끼다 와이셔츠가 바지 밖으로 빠져나온 걸 미처 알지 못했다. 등교 시간이 아슬아슬할 때면 항상 그렇듯 수많은 친구들과 전력으로 교문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을 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오oo! 너 일로 와.”
불행 중 다행인가. 나를 부른 선생님은 내가 며칠 전 교복 넥타이 사건 이후 마음속으로 존경과 사랑을 마지않았던 그분이었다. 생각보다 나쁜 분은 아니라고 남몰래 변호했던 나를 알아보신 건가. 가벼운 마음으로 선생님께 다가갔고, 내 뺨에는 번쩍번쩍 네다섯 번의 불꽃이 일었다. 저번 넥타이까지 들먹이시며 몇 대가 추가되었던 것 같다. 나는 철저히 무신론자가 되어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 날 내 아침은 처참하게 망가졌고, 그 하루가 어땠을지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아시리라 생각한다. 수업이고 뭐고 다 때려치워버리고 싶었다. 쉬는 시간 내내 친구들과 그 선생님을 씹어 대며 저주를 퍼붓고도 화가 풀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시간은 많이 흘러 나는 지금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나도 예전 그분들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의 파도에 휩쓸려 산다.
그래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그냥 넘어가자.
아... 기분도 안 좋은데 확 그냥..
항상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하겠다는 내 다짐보다 그 날의 컨디션이, 그때의 기분이 나라는 교사의 아이덴티티였다.

오늘따라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는 아이가 유달리 거슬려서 종례 후 불러냈다.
“너는 도대체 뭐하러 학교에 와? 성적 좀 잘 나온다고 수업 안 들을 거면 학교는 왜 다녀?”
알다시피, 요즘 학교에는 체벌이 허용되지 않는다.
나는 내 혀로, 입으로, 말로 아이들 체벌했다.
그 아이는 오늘 저녁 내내 기분을 잡쳤다고 생각할 것이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생각하며 친구들과 나를 씹어대겠지......




얼마 전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레몬 심리)’라는 책을 읽으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의 기분을 살피고 감정을 나누는 일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모두가 서로의 기분을 알아야 할까? 다른 사람은 당신의 기분을 모르고 지나갈 권리가 있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모르고 지나칠 권리가 있다.”라는 구절에서 많은 울림을 느꼈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는 존재이지 아이들의 관심을 갈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들의 기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내 기분에 주의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

내 기분이 태도가 되어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태도를 보고 기분을 헤아려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초보 교사로서 학교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교사의 분노와 짜증으로 학생은 나아지지 않는다. 상황은 언제나처럼 점점 나빠져만 간다.

감정은 내가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폭발하듯 끓어 넘치고 나는 그것을 쏟아붓고는 자책한다.

부디 내일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교사가 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수업 준비가 무척이나 힘든 어느 일요일 오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