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없는 퇴사는 총 없이 전쟁터로 향하는 길이었다.
몇 년 전에 회사를 다니면서 고민을 했다. 아침 일찍 나와서 늦게 까지 일하는 삶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에게 중요한 건 무엇일까?라는 고민이었다. 당시에는 8시 출근 21시 퇴근을 했다. 그만큼 연봉도 높은 편이었다. 같은 시기에 취업한 친구 중 비슷하거나 더 많이 받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렇게 10년 20년 할 수 있을까? 난 그게 행복할까? 위에 선배들을 보면 가정이 있어도 충실하지 못했다. 아이가 있는 사람은 아이에 자는 모습만 보고 있었다. 나는 변화가 필요했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 이런 말이 있었다. "지금 당신이 부자가 아니라면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부자가 될 일을 찾아라." 그 당시 이 말만 그냥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래서 퇴사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책에 그 말만 듣고 생각한 건 아니다. 10년 후를 봤을 때 어느 정도 돈을 모을 수 있지만 내가 불행하고 몸과 마음이 많이 아플 거 같았다. 어차피 나갈꺼라면 한 살이라도 빨리나 가서 다른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전공한 과는 어딜 가나 비슷한 정도의 업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공을 살리지 않는 일을 하려고 생각하니 선택에 폭이 좁다고 여겨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길도 있었고 좀 더 천천히 준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자기 객관화도 부족했고 아는 것도 없었다.
그냥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하면 인생이 잘 풀리고 다 될 줄 알았다. 그러다 보니 그냥 무지했던 거 같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고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9시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씻고 잠시 쉬면 자야 했다. 그래서 주말밖에 시간이 없었지만 놀기도 하고 쉬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월급이라는 편안함에 중독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절박함이 없어서 스스로 절박 함을 만들기로 했다.
시간이 없어서 조금 찾아보니 조금만 노력하면 회사에 가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고 노력에 따라서는 회사에서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 같았다. 퇴근 후 느슨해진 마음과 피곤한 마음으로 변화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절박함과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퇴사를 했다.
막상 나오고 보니 행복했다. 왜 이제 나왔나 싶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만 있었는데 하루를 온전히 내 맘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아침에 운동도 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갑자기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 줄 몰랐다. 그리고 모아둔 돈이 있다고 생각하니 더 나태해졌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책도 읽고 강의도 들었지만 잠깐이었다. 점점 게을러지다가 시간이 어영부영 지나버렸다. 나름의 계획이 있었지만 생각처럼 잘 안되었다. 잘 안되다 보니 금방 포기하고 다른 걸 찾았다. 급하게 성과를 내고 싶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편안함에서 조바심으로 핑계가 옮겨갔다.
퇴사를 하는 것은 좋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한 준비가 필요하다. 정말 절박한 마음과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을 때 빛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회사 명함이 없는 나는 생각보다 존재감이 더 낮다. 일하던 분야에서는 명함으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 회사를 등에 업고 하던 업무와 혼자 하는 일은 차이가 컸다. 아무도 알아주고 찾는 사람이 없고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퇴사를 결정하고 기존 업무를 정리할 때는 자신감이 있었다. 뭘 해도 지금보단 많이 벌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기는 어려웠다. 무기 없이 전쟁에 참가한 기분이었다. 모두가 바쁘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퇴사를 하며 했던 다짐은 "다시는 회사원으로 살지 말자였다." 하지만 점점 줄어드는 잔고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취업시장에 뛰어들었고 다시 회사에 소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