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에게 차 한 잔 건네기
최근 <타이탄의 도구들>이란 책을 읽다가 한 부분에 유독 눈길이 갔다. 전반적으로 인상 깊고 기억하고 싶은 문구가 많은 책이기도 했지만, 유독 그 부분에 눈길이 간 것은 바로 차가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루틴 중 차 한 잔을 마시는 부분이 잠깐 나오긴 하지만, 하나의 에피소드로 다시 등장하는 차에 당연히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차 이야기는 붓다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붓다와 마왕 마라의 이야기이다. 마라가 붓다를 찾을 때마다 헌신적으로 붓다를 섬기던 제자 아난다는 헐레벌떡 붓다에게 알리기 일쑤였지만, 붓다는 아니었다. 마라가 오면 쫓아내는 대신 조용히 불러들여, 흙으로 만들어진 찻잔에 차를 담아내어 주었다. 그러면 마라는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곤 했다고 한다. 저자 팀 패리스는 그 마라가 곧 우리 자신이라고 언급해 준다.
이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서로 다른 모습의 나로 나를 찾아오는 수많은 감정들, 그것을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바로 차 한 잔을 건네는 것이었다.
최근 나 스스로에게 차 한 잔을 건넨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저 차가 마시고 싶고, 상황에 맞춰 생각나는 그런 차가 아니라, 온전히 나만을 위한 차 말이다. 나의 모습을 바라봐 주기 위해 우려진 그 차가 최근에는 유독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순간 바쁜 상황을 지나쳐오기 위해 없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차를 마시기에, 아니 나에게 차를 대접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은 새벽이나 늦은 밤인 것 같다. 새벽의 티타임은 차를 통해 더 좋은 날을 맞기 위해 준비할 나를 위한 시간이고, 밤의 티타임은 꼬박 하루를 다 보낸 나의 마음을 다독여 줄 시간이다. 어쩌면 이 두 시간을 모두 해 보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한 해를 다 보내고 있는 지금, 12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 내일부터 나도 마라에게 차를 대접하고자 한다.
2021년의 끝자락, 마라에게 차를 대접하기 좋은 12월. 과연 나의 마라는 나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그 모습을 내가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왠지 내일 새벽의 차는 무이암차 중 북두로 해야 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