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도 좋아하는 것이 생기다
첫째 아이가 25개월 쯔음이 되었을 때, 본인이 확실하게 좋아하는 것이 생기는 것 같았다. 아직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이 서툰 단계였었는데, 그 와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작은 토끼인형에게 종종 이렇게 물었다.
"안녕 토끼야?
너는 뭐어 좋아해애?
빠나나 좋아해애?"
토끼인형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꼭 이렇게 물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을, 다른 놀이를 하다가도 갑자기 토끼 인형이 생각났던 건지 토끼 인형을 부리나케 찾아서는, 있는 힘껏 토끼를 안아주고 나서는 그 토끼가 무얼 좋아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과일인 바나나를 토끼도 좋아하는지 물어보았다.
아마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도 좋아하는 것이 생기고, 취향이라는 것이 생기던 시점이...
사실 이런 시기가 이렇게나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 아직 아가아가한 모습의 나의 아이가 내가 선택해 주는 것이 아닌 본인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선택한다는 것이 한편으로 기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조금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취향이 생긴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어른들이 많은 요즘 취향이 생긴다는 것이 더 소중하고 귀하다고 생각되는 나날들이었다. 그래서 아이의 마음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한창을 토끼 인형에 빠져있다가, 동물원 기프트샵에서 만난 노오란 삐약이와 사랑에 빠졌다. 기프트샵에서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해 "삐약이! 삐약이!"를 외치며 어떻게 해서든 집에 데려가겠노라고 결심한 아이의 마음은 나를 움직였고, 그날 삐약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이의 행복한 미소가 아직도 생생하다. 샛노란 색에 동그랗고 작은 눈, 기다란 입을 가지고, 동글동글한 몸매를 뽐내며 세상 보드라운 살결을 가진 삐약이는 아이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 같았다. 속상할 때도, 잠을 잘 때도, 어린이집을 갈 때도, 울음이 터질 때도 엄마가 아닌 삐약이만을 찾았으니까. 그 삐약이에게도 좋아하는 것을 물었다.
인형을 때론 뚫어져라, 때론 지긋이 바라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인형이 좋아하는 것을 알고자 하는 그 마음이 귀엽기만 하다가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그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이 아닐까. 이 진리를 왜 난 새삼 깨닫게 된 것일까.
그다음으로 사랑에 빠진 대상은 <엔칸토(Encanto)>! 디즈니플러스를 둘러보다가 갑자기 홀린 듯이 틀어달라고 해서 같이 보게 되었는데, 하루에 한두 번은 꼭 시청하고, 모든 것을 엔칸토화(?)시키는 모습에 웃음이 나곤 했었다. 특히 치마를 입고 나오는 캐릭터들 때문에 본인도 치마를 입고 시청해야 했고, 사운드트랙은 정말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하루종일 틀곤 했었다. 그걸 볼 때면 원피스를 찾아 입혀달라곤 한 후, 소파에 올라가 음악이 나올 때마다 리듬을 타고, 힘든 기색 없이 방방 뛰곤 하는데... 그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내 시야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던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어떻게 그 애니메이션을 선택해서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알고 보니 이 애니메이션, 빌보드 차트에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까지 한 경력이 있었던 작품이었음)
좋아하게 되면 그 대상에 철저히 집중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맘껏 표현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왜 나는 요즘 그러지 못할까', '왜 요즘 나는 대부분의 것에 심드렁해졌을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저렇게 행복한 것을! 나는 왜 그 행복을 저버리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 수많은 것에 관심이 가고, 좋아하고 또는 사랑하게 되다가도 그 마음이 식게 되었다가, 또 다른 대상에 마음을 쏟게 될 우리 아이가,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맘껏 좋아하고 표현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 마음을 응원하기 위해서 나도 종종 물어봐주어야겠다.
"우리 딸은 요즘 뭐 좋아해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