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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양 Jan 19. 2023

시를 닮은 차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

나는 시를 참 좋아한다. 시를 많이 읽는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맘에 드는 시가 생기면 시집을 사는 편이고, 그 어느 장르보다도 시에서 많은 감동을 얻는 편이다. 


시를 언제부터 좋아했을까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동시를 지어 오라는 숙제를 받았는데, 그때 우리 집 앞마당에 심어져 있던 대추나무를 보고 나름 영감을 받아 시를 지었던 기억이 있다. 비가 내리고, 그 비가 갠 후에 대추나무 이파리 위에 비가 남기고 간 물방울들을 보면서 시가 쓰고 싶어 졌었고 그 마음을 담아 시를 써 내려갔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앞마당 나무 위에 있던 빗방울이었는데 자세히 보기 시작하니 그 장면은 시가 되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고등학생 때 문예부에 들어가서도 시를 택했었다. 한편으로는 소설을 쓸 자신이 없어 시를 선택한 것도 있었지만, 소설보다는 시를 쓰는 것이 내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도 시를 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었다. 무언가를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면서 쓰는 시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를 좋아했었고, 아직도 시가 좋다. 그런데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가 시를 닮았다는 생각.


영화 <시>에서 주인공이 문화센터에서 시를 쓰는 것을 배우는데, 그 수업의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여러분, 사과를 몇 번이나 봤어요? 백 번? 천 번? 백만 번? 여러분들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오래오래 바라보면서, 사과의 그림자도 관찰하고, 이리저리 만져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한 잎 베어 물어도 보고, 사과의 스민 햇볕도 상상해 보고, 그렇게 보는 게 진짜로 보는 거예요."


내가 차를 마실 때, 마치 시를 쓰듯 마시고 있지 않았나 싶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차에 진심인 사람이라면 나처럼 시를 쓰듯 차를 마시고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차를 마시는 걸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차를 마실 때 차를 마시는 그 행위만이 아니라 차를 마심으로써 많은 것들이 확장되어 내 눈앞에 펼쳐지곤 한다. 그 순간이 참 좋아 나는 차를 계속 마시는 것 같다.


영화 속의 대사처럼 차가 좋아졌던 그 순간부터 차를 마실 때에는 찻잎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우려낸 물도 한없이 바라보게 되기도 했다. 다 우려낸 찻잎을 만져도 보고 바라도 보고 먹어도 보고... 그러다 보면 차가 내 찻잔에 담기기까지의 여정이 상상이 되곤 했다. 찻잎이 돋아나는 그 순간부터 내 입술에 닿기까지 너는 어떻게 오게 된 것이었을까 혼자 찻잎에게 묻곤 했다. 나도 차를 진짜로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차가 시를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들여다 보여야 보이는 차처럼, 시도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시선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천천히 음미해야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닮았고 말이다. 


내일은 시집을 곁에 두고 차 한잔을 해야겠다. 차 한 모금에 시 한 소절을 읽고, 또 차 한 모금에 시 한 소절을 읽고... 생각만 해도 세상에 이런 호사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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