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더라도 사랑스럽게, 다시 시작하는 세계
https://www.youtube.com/watch?v=GmYvkQrVCX4
알아 나도 내가 이상한 걸 전부 알아
뒤돌아서 소곤댈 필요는 없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좋아해 시들지 않아
아포칼립스 아포칼립스 아포칼립스 아포칼립스
이상한 애(Ms. Apocalypse), 최진솔 / <세기말의 사랑>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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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는 이상한 애다. ‘세기말’이라는 별명을 가진, 치매에 걸린 큰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말 몇 마디 섞어보지 못한 짝사랑 상대를 위해 횡령에 가담하는, 중소기업 경리. 세계가 끝날 줄만 알았던 1999년, 흑백의 화면 속에서 영미는 중앙을 지키지 못하고 늘 한 쪽에 치우쳐 자리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을 지키지 못해 감옥에 간다.
그래도 2000년은 온다. 멸망하지 않은 세계에서 출소한 영미와 함께, 영화는 다시 시작한다. 이제 영미를 ‘세기말’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고, 치매에 걸린 큰어머니는 죽었고, 유부남이었던 짝사랑 상대는 감옥에 있으며, 더 이상 중소기업 경리로 일할 수도 없다. 세상의 종말이 오지 않은 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어쨌거나 세기말을 넘긴 영미는 이제 화면의 중앙에 선다. 푸르고 쨍한 화면 속에서 주홍색 머리를 하고 분홍색 옷을 입는다. 물론 그 모습 역시, 여지없이 이상하다….
이상한 영미와 함께 하는 것은 짝사랑 상대였던 도영의 아내 ‘유진’이다. 유진은 영미와는 너무 다른 사람이다. 세련됐고 당당하고 도도하다. 그리고 전신마비 장애가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동행은… 이상하다. 정말로 이상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하다. 함께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가도 설득이 되고, 아무도 위로하지 않는데 위로가 되고, 분명히 촌스러운데 너무나 사랑스럽다.
영미가 유진이 감춰온 비밀을 알게 되던 날, 유진은 영미의 등에서 상처를 발견한다. 등에 있는 탓에 영미 자신은 한 번도 보지 못한,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화상 자국이다. 유진은 그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가만히 만져보고는 이름을 붙여준다. 꼭, ‘맨드라미’를 닮았다고. 그러면서도 맨드라미의 꽃말은 ‘치정’이라며, 유부남을 좋아했던 불륜녀에게 어울린다며 웃어 보인다.
이 꽃말은 영화의 결말부에 이르러 영미의 입에서 다시 한번 변주된다. 영미는 맨드라미의 꽃말에는 ‘시들지 않는 사랑’이라는 뜻도 있다며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다. 치정과 시들지 않는 사랑, 다르게 등장하는 두 가지의 꽃말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영미가 다시 만난 ‘도영’에게 맨드라미의 꽃말을 알려주려 하기 때문이다. 영미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짝사랑했던 도영에게 맨드라미의 꽃말이 뭔지 아느냐고 묻는다. 한참 입술을 달싹이던 영미는 마침내 한 가지의 꽃말만을 답한다. 그건 바로, “치정”이라고.
그래서 이 영화에서 도영을 향한 영미의 짝사랑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영미의 세기말이 유부남을 짝사랑한 불륜녀의 치정이라 해도 괜찮다. 사실 영미가 유진을 만나 동행하게 된 순간부터, 도영의 존재는 그녀의 중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미의 맨드라미는, 영미의 ‘시들지 않는 사랑’은 결국 영미 자신만의 것이다. 유진이 발견해 주고 영미 스스로 의미를 찾아낸 소중한 마음이다. 그렇게 영미의 세계는 다시 시작된다. 한결같이 이상하더라도, 더없이 사랑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