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쉬면서 일헙서게"
말을 건네면
"놀면 뭐해, 죽어서야 노는 거지"
어머니들은 늘 타박 아닌 타박으로 내 가슴을 후려친다.
제주 마을을 걷기 시작하면서 어머니, 그녀들을 자주 만난다.
그녀들은 누구보다 자연의 순리를 잘 따랐고 세상 살아가는 방법에 조급함이 없다. 언제나 용감하고 씩씩하다. 늘 본인 몸뚱이보다 자식과 가족이 우선이다. 그녀들은 쉬면 더 아프다며 오히려 거친 세상살이에 유쾌하다.
말을 건네는 낯선 객에게 퉁명스럽게 대꾸 하지만 속으로는 반가워 흙 묻은 거친 손으로 여름에는 수박을 썰어 건네주고 겨울에는 떡을 쪄준다. 비에 젖은 모습을 보고는 어서 들어오라며 달달하고 진한 커피도 타 준다. 말벗이 생긴 김에 그녀들은 살아온 이야기도 서슴없이 해준다.
시간이 바쁠 때도 마을에서 어머니들을 만나게 되면 그녀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다. 그녀들이 건네는 것은 무엇이든 감사하게 받는다. 어떤 이들은 괜스레 부담이 된다고 하지만 나는 그녀들 앞에서 주저하지 않는다. 그녀들 허한 가슴에 외로움 가득 피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긴 수다를 듣고 맞장구를 치고 이 얘기 저 얘기하는 동안 금세 반가운 정이 들고 헤어질 시간이 찾아온다. 늘 아쉽다. 언제 다시 만나 다시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항상 “다시 오쿠다. 삼촌 그때까지 건강하십서” 잊지 않고 말을 한다.
평생 일과 함께 주름진 할머니가 된 어머니들, 그런 자신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에게 사람의 욕심을 찾아보기 힘들다. 손녀의 진주 머리띠를 곱게 꽂은 흰머리, 보라색 매니큐어를 서툴게 칠한 거친 손, 알록달록 꽃무늬 예쁜 머리 싸개 하나하나에 그녀들은 행복해한다.
“참 곱다예”
“고와”하면서 수줍은 미소를 머금는다. 어머니 그녀들은 참 곱다.
가끔씩 그늘에 기대어 쌓인 노고를 진한 수다로 풀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을 본다. 예전에는 그녀들의 수다가 왜 그렇게 시끄럽게만 들렸는지? 돌이켜보면 육지와 떨어진 섬에서의 고단하고 외로웠던 그녀들만의 삶을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여자라는 이름으로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몰인정함 때문이다.
어릴 적 기억 속 나의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처럼 수다스러웠다. 조용한 성격의 나는 그런 어머니가 가끔은 창피했다. 왜 그랬을까? 어머니는 지금도 말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어머니의 수다스러움이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그게 어머니가 삶에 쌓인 노곤함을 풀어내는 유일한 방법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새벽부터 일을 나갔다. 일찍 일을 나서는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챙기고 과수원 일도 도왔다. 방학이 되면 일이 더 많았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방학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간절했다. 철부지 생각이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는 몸이 약하다는 핑계로, 결혼하고 회사 다니는 동안은 일이 바쁜 핑계, 일을 그만둔 이후로는 마을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어머니 일을 잘 도와드리지 못하고 있다. 항상 죄송하다.
이제 내 나이가 그 오래전 나의 어머니 나이가 된다. 조금씩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그녀들만의 살아가는 방법과 아픔이 있음이 보인다.
2016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에서 만난 어머니들은 상점 앞에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무릉리에 못 가본 지 한참이 되어간다. 어머니들은 건강하실까? 그녀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2018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에서 만난 어머니는 아침부터 집 우영팟에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이날 우연히도 옆집에 살았던 한 소년이 옛 추억을 더듬으며 어머니를 찾아왔다. 소년은 이미 장성해서 내 나이 뻘이었다. 추억을 꺼내 들고 웃음 가득 지으며 그 옛날 이웃과 즐겁게 통화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2019년 서귀포시 안덕면 상창리에서 만난 어머니는 마루 문을 열고 덥다며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옛날 그대로인 집 안을 보다가 부엌 바닥이 흙이어서 놀랐다. 그리고 부엌에 단 하나뿐인 신발이 짝짝이여서 한번 더 놀랐다.부엌에 나란히 있는 신발이 짝짝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알고 있을까?
2019년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에서 만난 어머니는 진주 구슬 머리띠를 곱게 하고 있었다.
진주 구슬 머리띠는 손녀 거라 했다. 동행들의 바쁜 재촉도 잊고 어머니와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요일이라 시외 자식이 올 건가 기다리는데 안 온다고 말을 했다. 혼자 살아가는 세월이 얼마나 적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