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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부부 Jun 18. 2021

변해버린 나

아무도 모른다, 내 마음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잠깐이나마 내 마음대로 쓸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시간에 뭘 할까 생각하다가, 미뤄뒀던 유산소 운동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러닝머신을 타며 지방을 열심히 태우고 있다.


물론 내가 달리는 이유는 아이를 낳기 전의 몸매를 되찾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동기부여마저 버거워 모두 포기하고 싶은 날이 있다. 바로 오늘이었다.


발단은 아이의 병원 진료였다. 콧물이 흐르지는 않는데, 잘 때 약간 그렁그렁 하는 코 소리가 무척 신경이 쓰여 병원을 가기로 했다.


아이를 병원에 혼자 데리고 가야 했던 오늘. 밖에선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소아과는 산부인과와 같이 있는, 동네에서 제법 큰 병원이다. 아이를 준비시키느라 대충 세수만 하고 부랴부랴 차를 몰았다.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빨리 간다고 갔는데 소아과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다. 차를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 옆 건물 산부인과 주차장을 찾았다.


산부인과 주차장은 더 바빴다. 지상 주차장은 이미 꽉 찼고 기계식 주차를 위해 대기하는 차가 3대였다. 내 뒤에도 차가 대기하고 있어 빨리 움직여야 했다. 재빠르게 왼손으로 아이를 업었다. 오른손엔  아이가 비라도 맞을라 우산을 들었다. 어깨에는 내 가방을 걸었다.


아이와 우산, 내 가방을 들고 터벅터벅 걸어 도착한 소아과도 복잡하긴 마찬가지. 유모차라도 가져올걸 그랬나 보다. 접수한 뒤 아이 몸무게를 재고 나서야 병원 의자에 앉아 한숨 돌렸다. 순번이 돼 진료를 본 뒤 아이를 업고 우산을 들고 짐을 메고 약국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계산을 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이동해 차가 나오기를 기다린 게 10여분. 아이를 힘겹게 카시트에 태우고 대충 상황을 정리한 뒤, 뒷 차에 떠밀리듯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병원에서 탈출해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이 양말 한 짝은 어디에 떨어졌는지 벗겨져 없었고(어딘가에 떨어졌나 보다. 하원 할 때 보니 다른 양말을 신고 있었다. 내가 다른 양말도 챙겼었나 보다.) 약은 어떻게 먹이라는지 약사의 말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가출한 정신을 붙잡고 약병에 붙은 설명 보며 투약의뢰서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이 모든 일을 해치우고 차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어린이집에 같이 보냈어야 했을 빈 약병이 조수석에 떨어져 있었다.


육아가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나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 병원 한번 다녀왔을 뿐인데 자존감이 왜 이렇게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업고 우산을 들고 짐을 들어야 했던 나를 떠올리니 순간 울컥했다. 억척스럽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이렇게 억척스럽지 않았던 거 같은데. 아침이면 여유롭게 마시던 커피 한 잔이 왜 이렇게 그리운지. 아침마다 꼈던 렌즈나 화장은 지금 보니 어찌나 사치스러운 것이었는지. 어디 갈 때면 항상 겼던 책 대신, 수북이 가방에 넣는 아이 물건. 운전할 때마다 듣던 노래도 그저 여유로운 자들의 몫이었던 오늘.


육아는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매번 힘겨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언제나 항상 나 말고 아이가 먼저였다. 내가 배가 조금 고파도 아이 밥 먹이는 게 우선. 내가 세수는 못할지언정 아이는 깨끗하게. 내 옷 입을 건 없지만 아이 옷은 매달 쇼핑. 내가 피곤해도 아이가 깨있으면 육아의 시계는 계속 돌아갔다.

일도하고 책도보고, 자유롭던 나를 다시 만날수있을까. 사진 최수진

살을 빼려는 이유도 표면적으로는 날씬해지고 싶어서지만, 내면에는 나를 되찾고 싶은 욕망이 있다. 엄마가 됐지만, 멋있는 직장인이자 온전한 최수진이었던 그때로. 그 마음을 되찾고 싶은데 거울을 보면 항상 있는 나는 헝클어진 머리에 푸석한 얼굴 불어버린 살, 벌어진 골반. 이런 모습이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다. 아이 바라기가 된 엄마지만, 멋있는 내 삶을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항상 충돌한다. 그럴 때면 언제나 우울해지고 그 기분이 고스란히 식구들한테 전해진다. 남편이야 그냥 '살이 빠지지 않아' 하는 투정쯤으로 생각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기분은 아니다. 우울해진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을 뒤져보면 다른 엄마들은 자기 관리도 잘하면서 가족도 잘 챙기면서 일도 잘하는 것 같던데, 나는 왜 못할까 자책감이 든다. 우울함의 수렁이다.


그렇다고 아이를 낳은 걸 후회하는 건 아니다. 아이는 너무 예쁘다. 아이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것도 아니다. 엄마로서의 나는 너무나도 행복하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이 있다. 자면서도 엄마를 애타게 찾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해 주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다. 그럼에도, 아이가 예쁜 것과 내 삶을 사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이의 엄마가 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풀어내지 못할 숙제를 떠안게 된 걸 수도 있다. 오늘의 우울함을 어떻게 또 이겨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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