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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줴이 Mar 06. 2022

무지의 덫

그들만의 잉여로운 노화의 시간

나이 든 사람들의 대부분은 육체의 노화를 이유삼아 일말의 가능성을 모두 차단해버린다. “아휴~ 이 나이에 뭘 할 수 있겠어~”, “늙어서 금방금방 까먹어~” 정말로 나이 들면 모든 게 쇠태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이 들면 잉여로운 시간만 축내다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게 맞는 것인가? 나이 든 사람들이 노화를 바라보는 공통된 반응에 글쓴이는 한 가지 수긍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동네 노인네들과 다를 바 없이 늙고 있는 세계적인 석학의 뇌를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는 것이다. 왜 어떤 노인네는 이산화탄소만 내뿜으며 비생산적인 시간만 보내고 있고, 왜 어떤 노인네는 젊은 사람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저서활동을 이어갈 수 있냐는 것이다. 일반적인 노인네들이 생각하는 노화에 의한 불가능은 애초에 가능성을 차단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모순에서 출발한다.

어떤 작가가 SNS에 ‘나이가 드니 점점 OO 하다’라는 글을 올렸다. 우리는 으레 나이가 드니 점점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혹은 나이가 드니 점점 그 무엇도 하기 힘들다 정도의 문장을 예상할 것이다. 그런데 중년의 그 작가가 한 말은 나이가 드니 점점 공부가 잘된다는 것이었다. 나잇값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해력과 뇌의 가소성이 더해지면 그 시너지는 나이가 들었을 때 비로소 나타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뚱이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대부분의 노인네들은 뇌의 가소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잉여로운 시간만 축내고 있을 뿐이다. 물론 어느 누가 육체의 노화를 막을 수 있으랴. 다만, 불가능한 모든 이유를 노화라는 범주로 깡그리 묶어 버리니, 단 1%의 가능성도 생각하지 않는 노인네들의 삶이 우울한 것이다.


잉여로운 노인네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어떤 기능도 쇠태 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비판의식 없는 노인네들이 방구석에서 자리 차지하고 있는 한 이 세상은 바뀌지 않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기간에 박근혜 후보를 향한 일부 노인네들의 태도는 참 기가 찰 노릇이었는데, 한 나라의 수 후보 능력이 아닌 동정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아유~ 부모도 없이 불쌍하자녀~



노화의 시간이 잉여로우면 다단계 업체의 위문공연에 끌려가 흥청망청 써도 모자라지 않을 휴지 보따리와 검증되지 않은 건강음료만 잔뜩 사들고 올뿐이다. 그들이 정작 챙겨야 할 것은 불가능의 영역으로 처박아놓은 가능성과 저것이 진짜가 맞는가 의심하는 비판의식이다.


https://youtu.be/EDCuD-zs6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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