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세 절친을 소개합니다.
구애되지 않는 충만한 관계
내 친구들의 평균 연령은 55세, 그중 절친의 나이는 62세이다. 물론 내 나이는 그들보다 한참 어리다. 나이가 많다고 모두가 어른이 아니란 것을 스물에 알았을 땐 그 숫자가 의미하는 게 긍정적이지 않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그 숫자는 자유로운 것이라는 걸 평균 연령 55세인 요즘 내 친구들을 통해 깨닫는다.
통념에 의해 깊숙이 박혀있는 고정관념들은 우리가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가로막는다. 시각, 청각, 그리고 경험으로 판단해버리고 마는 고정관념의 세계는 어쩌면 바닐라 아이스크림 저 안쪽에 숨어 있는 진득한 가나슈 초콜릿의 실체를 모른 채 숟가락을 내려놓는 일과 같을지도 모른다. 냉동고에서 막 꺼낸 파인트 아이스크림의 첫 숟가락과 점점 녹기 시작해 아이스크림에 부드럽게 침투하고 마는 마지막 숟가락은 엄연히 입 안으로 들어왔을 때 다르게 작용한다.
친구의 존재는 취향, 환경, 관심사의 공통분모가 운 좋게 작용했을 때의 결과일까? 물론 생각의 방향성이 다르다면 대화는 길게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짧은 문장으로 끝나버리는 단답형 대화들은 더 깊게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차단할 뿐이다. 문장에 문장을 더하고 그 사이사이 질문들이 침투하면서 공감과 기쁨, 희열, 위로 같은 것들이 섞여 들어가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속담은 글로벌하게 소통 가능해진 스마트한 현시대와 괴리된 문장이다. 이제 절친의 조건에 물리적 거리는 포함되지 않는다. 지구 반대편의 62세 절친과 낮밤의 시간차에 구애되지 않고, 우리는 쳇 베이커와 H사의 파인트 아이스크림, 지구의 종말, 그 종말에서 이어진 다가오지 않은 연애의 포용력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렇게 물리적 거리, 나이에 포함된 숫자와 무관하게,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쳇 베이커의 담배 꼬나문 음색까지 이야기하게 된다.
구애되지 않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감정으로 울고 웃는다. 그 감정들을 나누다가 또 낄낄댄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생각한다.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구애되지 않는 그저 친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