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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현 Apr 28. 2024

자면서 욕하는 나, 정상인가요?

고요 속의 외침

사진: Unsplash의Luis Villasmil


 공황장애를 겪고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나조차도 모르게 뱉는 불결한 말, 바로 '욕설'이다. 그것도 쌍욕에 가까운 욕설을 수시로 뱉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정신이 깨어있을 때가 아닌 꼭 자면서 그렇게 욕을 한다는 것이다. 잠꼬대나 코골이 없이 시체처럼 자던 내가, 한밤 중 쌍욕을 퍼붓는다니 난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그 욕설이 내게도 들리기 시작했다. 보다 선명하게, 더 뚜렷이 나는 쌍욕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까? 운동? 게임? 술? 글쎄, 대개는 내가 즐기기 어려운 일상뿐이다. 나는 종종 카페에 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스트레스를 푼다. 정확히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느낌보다는 평화롭고 보다 자유로운 기분을 얻는다(그게 스트레스를 푸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액티비티 하진 않지만, 나름 잘 풀어간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시간만큼은 가장 평온함을 느끼고 있으니까.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난 왜 자면서 욕을 하는 걸까. 평소 일상에서 내가 욕을 많이 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곰곰이 해봐도 딱히 욕을 하는 상황이 그려지진 않는다. 오래 알고 지낸 동네 친구들을 만날 때 빼고는. 물론, 아예 욕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업무 내내 마음속 또 다른 입에선 수시로 욕을 뱉고 있다. 또, 길을 지나가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폐를 끼치는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욕하기도 했다. 으레 그래야 할 상황에서는 입 밖으로 꺼내진 않지만 속으로 육두문자를 곱씹곤 했다(혹시 저만 그런 것은 아니겠죠?). 그런 때가 아니고서야 내가 입 밖으로 욕설을 내뱉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욕을 귀로 듣는 걸 딱히 좋아하지도 않고, 욱하는 성격도 아니기에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았다.


 처음 내 욕을 목격한 건 나의 친형이었다. 형의 인테리어 회사에서 일했을 때, 어쩌다 현장 근처의 모텔에서 함께 잔 적이 있다. 그때 현장 일로 무척 피곤했던 난 먼저 곯아떨어졌다. 잠이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기척에 잠시 잠에서 깼는데, 형이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하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형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내게 물었다.


"래현아, 욕을 그렇게 해?"

"무슨 소리야? 내가 무슨 욕을 해."

"너 방금 자면서 씨X, 개X끼, 시팔저팔 하던데?"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처럼, 그렇게 형은 나의 잠꼬대 욕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되었다.

 

 아무래도 함께 사는 사람일수록 그 발견의 빈도수는 점점 많았는데, 특히 우리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나의 쌍욕을 듣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종종 엄마 침대에서 TV를 보며 잠이 들곤 한다. 이제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나를 깨우는 건 늘 엄마의 몫이었는데, 깨울 때마다 난 방언을 쏟아내듯 엄마에게 쌍욕을 토해냈다. 아니, 엄마에게 하는 욕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무릎을 탁 치면 다리가 올라가듯 날 깨우면 욕이 자동으로 나왔다. 지금이야 엄마는 우스갯소리로 뭔 욕을 그렇게 하냐며 넘어가지만, 처음에는 꽤나 당황스러워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아들이 쌍욕을 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되면 아무리 부모라 해도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나 평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의 나였으니까. 

 그간 내가 했던 욕설을 종합해봤다. 그 결과 나름대로 일정한 패턴의 욕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단 시작은 '씨X'이고, 그다음은 '개X끼'다. 그 일정한 룰 안에서 딱히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가끔 토핑을 추가하자면, '쌍X의 새X', '지X' 등이 있겠다. 뭐, 다행히 우리가 흔히 아는 그 욕설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혹여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거나, 듣도 보도 못한 창조적인 욕설을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아직(?) 그 수준까지 도달한 건 아닌 듯했다(사실 창조적인 욕설이란 게 뭔지도 모르겠고).


 다행이라곤 했지만 사실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언제까지 내버려두고 있자니 슬슬 어두운 미래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결혼을 했을 때, 아내에게 매일같이 불쾌한 자장가를 들려주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혼의 사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어쨌든 이대로 안주하며 살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잠만 들면 통제할 수가 없다. 분명 욕을 뱉고 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잠에 취해 제어가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느낌이라면 이해가 될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분. 이건 막으래야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 이 비밀을 말하기가 민망했지만, 친한 친구들에게만 조심스레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친구들은 하나같이 '너 평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속에 화가 많은데 표출되지 않아 잘 때 발산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게 아니고서야 뚜렷하게 욕하는 이유가 없었다. 분명 스스로 스트레스를 잘 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나저나 나는 무슨 스트레스를 받길래 그렇게 욕을 하는 걸까? 최근 들어 독서를 하며, 글을 쓰며 나름 평온한 삶을 영위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스트레스의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도 찾는 법인데, 지금의 나로서는 명확한 스트레스 원인을 모르기에 달리 방도가 떠오르지 않는다. 

 

 우연히 글을 쓰며 검색하다 발견한 있다. 생각보다 나와 비슷한 현상을 겪는 이들이 있다는 것과 이것이 '램수면행동장애' 질환 증상임을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글에서는 하나같이 일주일에 이상 잠꼬대로 욕설을 한다면, 수면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대로 방치하면 추후 퇴행성 뇌질환인 치매나 파킨슨병으로 이어질 확률이 아주 높다고 한다(주로 노년층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데, 아직 젊디 젊은 30대라고). 진료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 나는 서둘러 근처 수면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로 진료를 받아볼 예정이다.


 여러분은 혹시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풀고 계신가요? 아니면 저처럼 의도치 않은 불순한 방법으로 풀어내고 있나요? 그 방법이 당장의 스트레스를 푸는 데 도움은 될 테지만, 미래의 나에겐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답니다. 지금의 나를 한번 점검해 보시길 바라요. 뒤늦게 검색해 후회하는 저처럼 되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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