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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현 May 04. 2024

나는 (사소한) 카피를 씁니다

다 쓸 데가 있는 법이다

사진: Unsplash의Markus Winkler

 

 내 직업은 카피라이터다. 지금은 대기업의 오픈마켓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소개하고 광고하는 카피를 쓰고 있다. 누군가는 휙 보고 지나칠 수도 있는 딱 그 정도의 글을. 아마도 그런 비중 적은 일을 누가 맡아서 하는지 궁금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단 내가 하는 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이 사회의 작은 부품 아니, 그보다 더 미천한 존재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자신이 종이라든가, 노예라든가 하는 표현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겪은 사회와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작은 톱니들이 맞물려 결국 큰 바퀴를 굴리는 것처럼.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바로 우리들일지도 모른다.


 분수에 맞지 않게 나름 굵직한 회사들에 몸을 담았었다. 그래서인지 시설만큼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늘 깨끗한 탕비실과 화장실. 특히 화장실을 갈 때 항상 마음이 편했다. 비위가 꽤 약했던 나는 화장실에 유독 예민하게 굴었는데, 큰 회사들은 확실히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여러모로 편리했다. 또, 아침에 일찍 화장실에 가면 화장지 끝 부분이 세모나게 접혀 있었다. 오늘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표시다. 이런 세심한 표현 하나하나에 작은 감동을 받곤 했다.
 대개 그런 시설을 갖춘 건물들엔 청소 아주머니가 있다. 층층마다 돌아다니며 더러워진 공용공간을 청소해 주시고, 꽉 찬 쓰레기통도 깨끗하게 비워주신다. 인사성은 또 얼마나 좋으신지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해 주시는데 나도 덩달아 고개를 숙여 감사의 표시를 하곤 했다. 아마도 내가 회사를 다니며 감사를 표했던 사람은 청소 아주머니가 유일했을 것이다. 우리들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애써 주시는 모습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진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이토록 청결한 공간에서 마음껏 업무를 할 수 있었을까? 혹여나 화장실을 가는 게 두렵진 않았을까? 더러워진 탕비실을 보며 서로 눈치게임을 하진 않았을까?

 

 그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보고 있진 않다. 그들 역시 나와 다르지 않게 정당하게 고용되어 본인의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왠지 모르게 그들을 보면 많은 감정들이 오가곤 한다. 아르바이트를 헸을 때, 더러워진 화장실 청소를 수없이 해본 적이 있으니까. 또 그것이 얼마나 고된 작업인지 아니까. 새삼 이 일을 꾸준히 한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니 내가 느낀 이 감사함을 강요할 순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진심을 담아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것뿐이다.


 다시 언급하자면, 나는 남들이 볼 수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짧은 카피를 쓰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봤는지, 내 글을 보고 구매까지 이어졌는지에 대한 데이터는 볼 수 없다(정규직이 아니라 요구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런 데이터를 구현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한 용도로, 제품마다 광고가 될 만한 카피를 쓰는 것이 내가 이 회사에 존재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이 일에 나름 자부심을 가지며 일을 하고 있다. 정말 만에 하나 내 카피를 보고 구매를 할 수도 있고, 구매까지 이어지지 않아도 충분한 이해를 도왔을지도 모른다. 그런 순기능의 확률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거니까. 조금의 확률이라도 누군가는 그 자리를 맡아야 한다면 기꺼이 내가 하겠다고.

 

 매일매일 카피를 쓰며 점점 발전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시간을 활용해 보충하기도 한다. 서점에 가면 생각보다 카피라이터가 쓴 책들이 많다. 카피 잘 쓰는 법을 담은 강의 책부터 자신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까지 출간한 작가도 있다. 요즘 난 그들의 책을 하나씩 구매해 읽어보고 있다. 카피라이터는 어떤 생각의 전환과 발상을 통해 카피를 쓰는지, 또 구체적인 일상에서 어떤 영감을 받는지 등 간접적으로 그들의 삶에 침투해 일상을 엿보고 있다. 덕분에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마냥 구색만 맞추기 위해 급급하게 짜낸 카피가 아닌 정말 카피다운 카피를 쓰려고 시도하고 있다. 다행히 아직까지 나의 도전적인 카피에 제동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때론 피드백이 너무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사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개선하고 싶다. 하지만 그들 역시 피드백을 줄 만큼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다).


 큰 회사에 작은 부품으로써 그저 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정규직이 아니라 각종 복지 혜택은 받을 수 없지만, 그저 할 수 있는 일이 주어졌기에 나름대로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이토록 작은 존재인 나일지라도 필요하다면 쓰임새가 있는 법이니까.

 간혹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만약 내가 이 일을 하지 않는다고 통보하면 어떻게 될까? 다른 대체 인력을 뽑겠지. 하지만 교육 및 실습 등의 이유로 당장 투입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당장 소비자에게 제품을 매력적으로 보여주려면 그 과정의 일부인 내 손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내가 없으면 아무리 거대한 그들이라도 일에 차질이 생긴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위해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단지 내 크기만 조금 작을 뿐.


 나처럼 작디작은 존재의 사람일지라도 움츠려 들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보람을 느끼고 즐기고 있다면 된 일이다. 특히나 어시스턴트, 인턴, 계약직의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우리는 아직 작은 사람일 뿐이지, 낮은 사람은 아니다. 미천하단 생각 말고 조금 더 당당히 어깨를 펴시길. 우리가 없으면 그들도 매우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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