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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현 May 13. 2024

어느 서른의 외로움

홀로서기

사진: Unsplash의Geoffroy Hauwen

 

 '세월이 야속하다'는 말, 나이를 먹으며 점점 체감한다. 엊그제만 해도 분명 20대였던 나이가 지금은 만으로 따져도 서른을 넘겼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아직도 젊디 젊은 나이겠지만, 새삼 이제 어리다는 말을 들을 때는 아니라는 것이. 이제야 진정 어른의 길을 걷는 듯하다(그렇다고 어른처럼 성숙해졌다는 말은 아니다).


 친구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만 해도 가장 친한 친구 두 명이 장가를 간다. 나와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이제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고, 또 아이의 아빠가 된다. 발을 맞춰 함께 걸어가던 그들이 조금씩 앞서가더니 이제는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가정'을 이루려는 그들은 새로운 세계에 직면해 또 다른 가치관을 성립한다. 예컨대 요즘 술자리에서 우리의 대화 주제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자산이며, 집이며, 차며, 아기 계획까지. 내게는 아직 먼 얘기의 주제로 대화를 시작해 대화를 끝낸다.

"래현아 왜 말을 안 해?"


 사실 너무나 동떨어진 주제의 대화에 참여하자니 좀 민망하기도 하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할 말이 없다. 아직은 결혼을 약속한 여자 친구도, 결혼을 할 만큼 모아둔 자산도, 그렇다고 수입이 안적정인 직장도 없기 때문이다. 준비를 위한 준비도 안 된 나이기에 그곳에 내가 있다는 것도 좀 어색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낸 친구들인데, 이제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점점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성을 떠나 '사람‘ 자체에 대한 결핍을 느낀다. 가끔씩 이런 감정을 주변에 공유하면, 대부분은 소모임이나 동아리에 참여해 보라고 적극 권유한다. 하지만 요즘 말로 'I' 성향이 꽤 짙은 나는 그런 활동에 참여할 만큼 용기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반감을 느껴 적절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막상 친구들을 만나면 동떨어진 대화를 듣게 되니 이것 참 난감하다. 정녕 내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증폭되는 외로움과는 달리 내 마음은 한없이 고요하다'는 말을 시작으로 일기를 쓴 적이 있다.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혼자 지내보며 느낀 점을 하나하나 써 내려갔다. 어느새 빼곡하게 적힌 일기 속엔 온통 홀로 라이프에 대한 장점만이 가득했다. 물론 처음부터 쉽진 않았다. 남들과의 약속은 지키기 쉽지만, 스스로 한 약속은 어겨도 죄책감이 들었다. 계획했던 일을 미루며 누워 보내는 날이 잦아졌고, 혼자 밖으로 나가 보아도 대화할 사람이 없으니 여간 심심한 게 아니었다. 금세 지루해진 일상에 그대로 포기할까도 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게 아니기에 이왕 실행한 거 끝을 보기로 했다. 나는 계획부터 더 세부적으로 구체적으로 세웠다. 가령 블로그나 SNS에 글 1개 쓰기를 목표로 설정했고, 혹은 책의 목표 페이지를 정하고 열심히 읽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이룰 장소도 미리 찾아놓았다. 이왕이면 익숙한 곳이 아닌, 집이랑 먼 장소를 택했다. 그래야 미리 대비하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익숙하고 가까운 곳은 늘 계획에 차질을 주었다.  

 점점 시간이 지나며 변모한 내 모습을 마주했다. 외로움을 느낄 새 없이 온전히 내 일상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는 나. 설령 외로움을 느끼더라도 큰 감흥이 들지 않았다. 자주 만나던 친구들과의 약속을 뒤로한 채, 쉬는 날만 되면 혼자 노트북과 키보드, 책을 챙겨 홀연히 조용한 카페를 찾아 떠나기를 반복했다. 그곳에서 맛 좋은 커피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기적으로 사람들을 만나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히 이 사회에서 도태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반대로 뒤돌아 걸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친구가 없다는 말이, 외톨이라는 말이 듣기가 싫었다.

 자발적 외톨이가 된 일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약속이 없으니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생겼다. 그 시간에 미뤄왔던 잠을 자고, 가보고 싶었던 장소에 가보고, 카페에 들러 책을 읽고, 재정적 여유가 있으면 가끔 쇼핑도 했다. 그런 일상 중에 내가 뱉는 말이라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가 전부이지만,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심리적인 여유로움에 누구보다 평온한 하루를 보내곤 했다.




 스마트폰 사진첩에 셀카가 많아졌다. 좀체 셀카를 찍지 않는 나지만, 요즘 들어 카메라를 켜고 내 모습을 찍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 누가 나를 찍어주지 않으니 혼자라도 추억을 남겨놔야겠지. 좋은 솜씨는 아니어도 나름 이런저런 효과들을 넣어보며 최대한 멋스럽게 내 모습을 담곤 했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은 가끔씩 SNS에 올리거나 엄마에게 보내주곤 했다. 엄마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최근 들어 친구들과 만나지 않는 날 보며 엄마가 걱정하는 것 같았다. 집에서 엄마와 대화할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 "요즘은 친구들 안 만나더라?"였다. 이후엔 '친구들과 싸웠냐, 누구(특정 친구 이름을 언급하며)는 안 만나냐' 등의 인사말을 건네며 나의 홀로 라이프에 의문을 가지곤 했다. 결국 점점 늘어나는 의문에 지친 나는 일부러 자발적 외톨이의 삶을 살고 있다며 해명까지 해야 했다. 친구들도, 주변 동료들도 많아 늘 바쁜 엄마는 그런 나의 성향을 당장은 이해 못 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나의 그런 모습도 슬슬 익숙해지신 듯했다. 혼자 놀러 나가는 걸 알면서도 "잘 놀다 와~"하며 응원해 주시니까.


 요즘에는 외로움이 내게 찾아왔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외로움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물든 이 외로움을 절대 보내지 않아야겠다는 강박까지 들 정도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사람과의 만남을 배척한 채 홀로 지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분명히 임계점은 존재한다. 그때 가서 사람들을 찾아봤자 돌아오는 건 외면뿐이겠지.

 ‘어떻게 하면 다시 사람들과 동화되어 살 수 있을까?’, 요즘은 이 스텝에 머물며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굳이 부대끼며 살아야 하나 싶지만서도 너무 편한 길만 가려하는 게 아닌가, 이기적인 선택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내 힘이 필요할 수도, 나도 언젠가는 사람의 도움이 간절해질 수도 있는 건데.


 내가 쓰는 카피나 글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쓰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없다면, 굳이 정성 들여 글을 쓸 이유가 없다. 또, 이 업을 더 잘하고 싶다면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점점 외로움에 익숙해져 사람을 혐오하고 등한시하는 지경에 이르고 싶진 않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쓰는 글은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할 것이다. 지나친 강박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뚜렷해진 자아와 함께 찾아온 작은 반항. 나는 지금 그 시기를 맞이했다. 사람을 피해 부리나케 도망쳐 온 이곳은 한없이 평화롭고 조용하다. 


증폭되는 외로움과 달리 내 마음은 한없이 고요하다


 고요해진 마음과 더불어 내겐 외로움이 와도 버틸 수 있는 강인한 힘이 생겼다. 이제 잠시 혼자가 되어도 두렵지 않다. 그래, 그 자체로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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