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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현 May 15. 2024

불편은 내 편이 아니다

도망자

사진: Unsplash의Aliaksei Lepik


  세상을 조금 불편하게 보고 있다. 정확히는 느낀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세상이 온통 불편한 것 투성이로 가득해진 것이. 아마 태어날 때부터 그랬을 거다. 남들보다 조금 예민하다는 이유로 왠지 모를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누군가에겐 불편하지 않을 거리들이 유독 내게만 확대되어 보이는 건 왜일까.


 어느 날, 일이 끝난 엄마를 모시러 가기 위해 아파트 주차장으로 향할 때였다. 가는 내내 누군가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아파트 단지에 쩌렁하게 울렸다. 나와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한 젊은 여자가 크게 호통을 치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분한지 연신 상대를 향해 날카로운 목소리를 꽂아댔다(꼭 나를 향하는 것 같아 계속 눈치를 보았다). 그녀가 '언니'라고 하는 걸 보니, 가족 간의 큰 갈등이 생긴 것 같았다. 검은색 볼캡을 꾹 눌러쓴 그녀는 주변 사람은 신경 쓰지 않는 듯 큰 소리로 울분을 토해냈다. 적어도 시야에서 벗어나면 들리지 않을 것 같은 그 외침은 내가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차의 시동이 걸리고 서서히 진동이 느껴졌을 때, 그 박자에 맞춰 내 마음도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불편한 신호가 온 것이다. 하마터면 운전대를 잡기도 전에 공황장애가 올 뻔했다. 나는 머릿속에 울리는 그 소리를 쉽게 지울 수가 없었다. 연거푸 숨을 내쉬며 그 소리를 씻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왜 남의 일에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거지?', '내 일도 아닌데,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있잖아?', '이기적으로 생각해 널 위해서 말이야.'


 남이 불편하면 나도 불편하다. 희한하게도 상대의 불편한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 스민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감정이 내게 전달되다니, 그저 옷깃만 스쳤을 뿐인데 말이다. 남이사 무얼 하든 신경 안 쓰면 그만이지만, 사실 내게는 그게 참 어려운 일이다. 길을 걷다 우연히 얼굴을 찡그리고 가는 사람을 보면, 저도 모르게 그 사람의 '사연'에 대해 홀로 고민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 카페에서 언쟁을 펼치기라도 하면, 나의 모든 신경이 그곳으로 쏠린다. 듣고 싶지 않아도 자꾸 듣게 되고, 보고 싶지 않아도 자꾸 보게 된다. 나의 할 일은 철저히 뒤로 미뤄 둔 채로.

 최근에서야 알게 된 건데, 나는 '분쟁'을 싫어하는 타입 같았다. 문득 공황장애가 왔을 때를 떠올리면 그곳엔 높은 확률로 꼭 다툼이 있었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직원을 나무랄 때, 누군가 통화를 하며 싸울 때, 공공장소에서 서로 시비가 붙었을 때 등 사람 간의 갈등이 생기면 늘 내가 불안하고 초조했다. 설령 그게 나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라도 말이다. 예로 든 사례들은 생각보다 거의 매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들이다. 나는 그 흔하디 흔한 일상들에 늘 고통받고 있었다.




 내가 직장생활을 포기한 것도 그 이유이다. 항상 사투를 벌이는 전쟁터 같은 그곳에서 나는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었다. 치열하게 치고받고를 반복해야 하는 현장에서 나는 매번 도망치기 바빴다. 이기적이게도 내가 살려면 별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 분쟁과 최대한 멀어져야 했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은 포기해야 했지만, 대신 나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평생 백수로만 살 순 없으니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그렇게 얻은 직장이 지금 하고 있는 계약직 카피라이터다. 모든 계약직이 같진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다니는 이곳은 크게 분쟁이 없는 천혜의 환경을 갖추었다. 덕분에 조금은 마음 편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며 잘할 수 있는 글을 쓰는 직업을 연명할 수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출퇴근길에 종종 목격해야 하는 분쟁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지만.


 정규직의 타이틀을 달고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마냥 부러울 때가 있다. 점점 쌓여가는 연차와 올라가는 연봉이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었다. 그것과는 반대로 나는 4년째 연봉이 동결이다(오히려 지금은 첫 직장 때보다 수입이 적다). 내 팔자가 그런 것을 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주변에서 다시 정규직을 할 생각이 없냐고 많이들 물어보곤 한다. 그러나 나는 날 잘 안다. 분명 똑같은 과정을 겪고 또 도망칠 게 뻔하다. 회사에 실이 될 바엔 애초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을 일이다. 불안정한 계약직의 타이틀이라도 조금의 돈을 벌며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지금은 만족한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는 이들이 많다. 다들 말은 안 해도 저마다의 자극 버튼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게는 '분쟁'이었다. 어떤 이들은 내게 나약하다며 나무랄 데도 있지만, 이것이 내가 개척하는 삶의 방식이다. 물론 피하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다. 그러나 살아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네 건강이 우선이지


 한 번 망가져 본 사람은 안다. 왜 망가졌는지를. 공황장애를 겪은 후론 더는 날 갉아먹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설령 남들보다 돈을 적게 벌지라도, 사회적 지위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대수냐, 아니다. 살기 위해선 적어도 몇 가지는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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