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리뷰,스포일러 없습니다
나는 부산에 살면서 부산 사투리를 쓰는 작품들에 대해 사투리 ‘고증’을 디테일하게 들이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처음에야 신기하기도 하고 토박이로서 가장 먼저 들리는 부분에서부터 엄해지고 싶은 텃세에 깐깐하게 군 것은 있었지만 이제는 사투리가 들린다는 것 만으로 ‘우--와 정말 데단해~~~’ 스런 반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익숙함도 있겠지만 체념이기도 하다. 먼 곳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라면 결국 먼 도트에서부터 시작한다. 나타나는 어조야 사람을 오라 가라 하며 흉내 낼 수 있겠지만 만드는 사람들부터가 거리를 두고 있다면 타자화로부터 얼마큼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그런 지점에서 미나리를 보기 전에 시작부터 ‘한국인’으로서 어느 정도 체념하게 되는 부분은 있었다. 가령 한국인에 대한 어떤 선입견 적인 부분이 영화 속 문장으로 자리 잡힌 부분이라던가.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본다면 퇴고가 많이 이루어진 것 같다. 특히 최초라는 무게감에 앞서 등장인물에 대표성을 부여하려는 욕심을 많이 덜어내려 한 점이 좋았다. 이런 부분은 첫 술에 배부르랴 같은 관용적인 표현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 여겨질 정도로 조율이 잘 되었다. 주인공 부부는 (한국인 입장에서) ‘피땀 흘린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의 관습적인 수식어에 얽매이지만은 않는 인물들이다.
설명하기보다는 지켜보는 영화다. 광활한 와이드 스크린 안에서 주인공 일행을 뚝 떨어 두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한 명 한 명 스크린에 가득 채워 주며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각본 또한 마찬가지로 덩어리로서 움직이는 ‘가족’과 세상의 대결이 아닌, 구성원 각자의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깔끔한 디테일이 더해지니 보는 입장에서는 파고 들어가는 맛이 있다.
꼼꼼히 살피며 고려한 흔적에 ‘벌써 주류 할리우드가 이렇게까지나…’ 싶은 구석에 놀랐다. 그리고 그런 고민은 결말에서도 진하게 느껴졌다. 이야기로서도, 캐릭터로서도 초점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구나 싶었다.
미나리는 좋은 영화다. 한국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간극은 있지만 그 간극이 제공하는 생각할 거리도 계속 손에 쥐고 싶다. 정말 담백하게 콘텐츠로서만 말하자면, 가족들의 캐릭터 배분 및 전개의 자연스러움이라던가 제목도 왜 ‘미나리’인지에 대해서까지도 사실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의 제작 환경과 결과물은 그 자체로 충분히 ‘좋은 징조’를 느끼게 만든다.
미국 영화계에서부터 찍힌 하나의 도트가 기어이 우리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 궁극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상 콘텐츠 안에서 함께 면을 이룰 수 있도록. 그 징조를 우선은 칭찬하면서도 나부터 내가 자리잡은 곳의 이야기를 북돋아주고 생각을 멈추지 않으며 또한 전달하는 데에까지 힘쓰겠다는 다짐을 한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한국과 해외 관객 사이에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을 머나먼 ‘간극’에 치프 연기자로서 두 발을 걸칠 수밖에 없었음에도 굳건한 영향력을 보여 준 윤여정 배우가 이 영화를 통해 더 많은 기쁨을 누리게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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