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칠한말티즈 Dec 24. 2023

아기가 좋아지는 요즘

 노란색 버스가 2차로를 달리고 있었다. 연한 선팅을 뚫고 창밖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달리는 차들이 신기한 듯이 아이의 시선은 이곳저곳 분주하게 옮겨 다녔다. 아마 유치원생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아이의 호기심으로 부푼 볼살에 피곤한 미간이 절로 펴지고 입가엔 미소가 감돌았다.


 나는 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소음에 예민했던 나는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었다. 울음소리뿐만 아니라 기분이 좋아 내지르는 고음도 마찬가지였다. 사촌동생들을 달래주라는 부모님의 말에 마지못해 따르며 나는, 아기를 낳지 말아야지, 몇 번이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요즘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아기들을 보면 절로 아빠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다. 특별한 사건도 없이 자연스럽게, 볼을 한번 꼬집어 보고 싶고 우스꽝스럽게 까꿍을 해보고 싶어 진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며 한결같이 말한다. 이제 결혼할 때가 된 거라고. 하지만 한 편 이런 걱정이 든다.

 ‘나는 과연 아빠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나는 지금껏 아버지께 많은 것을 받았다. 아빠는 새벽같이 나가 저녁 늦게야 돌아왔다. 그러고는 뽀뽀랍시고 수염을 내 얼굴에 부볐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애정표현이란 것을 알기에 나는 어렸다. 온종일 노동에 시달리고 돌아와 피곤하지 않은 척 재잘대는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을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뒤돌아 몰래 내쉬는 한숨에 아들의 사교육비를 지원해주지 못하는 서러움이 뿜어 나오는 것을 깨닫기에 나는 너무나도 어렸다.


 이제 그 마음을 헤아릴 나이가 되어 바라본 아버지는 많이 약해졌다. 누가 낙서라도 한 듯 아버지의 얼굴엔 몇 가닥의 세월이 새겨졌다. 단단히 뭉친 세월의 무게는 아버지의 어깨에 고스란히 맺혔고 어깨를 주무르는 나의 손으로 저릿함이 전해온다. 나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이었을까. 가난했던 유년을 오롯이 버티고서는, 자식들에겐 더 좋은 환경을 물려주고픈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결코 말해주지 않을 아버지의 인생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흘러나올 때가 있다.


 결혼할 준비가 되어서가 아니다. 이제야 아버지의 크디큰 사랑의 깊이를 깨달았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평생 나에게 준 내리사랑이 조금은 와닿을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아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슴슴한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