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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말티즈 Jan 15. 2024

내 생에 가장 치열한 시기

 기숙 학원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번아웃이 왔다. 재수생의 일상은 단순했다. 새벽 6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 체조 후 씻고 밥을 먹으면 8시부터 단어 시험을 친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강의, 특강, 자습을 오가며 11시를 채운다. 20분 동안 4명이 샤워를 마치고 잠자리에 든다. 잡담이 들키면 벌점을 받고, 벌점이 쌓이면 퇴사다. 주말엔 운동을 하고 쉴 수 있는 자유시간이 있지만 그마저도 마음 편히 즐길 수 없었다. 매달 한 번 허용된 외출은 집이 멀어 나가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버린 것이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돌아보면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기일 것이다.”


 그로부터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 시절엔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면, 인생이 술술 풀릴 거라는 말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하나의 목표를 이루면 새로운 목표가 생기고, 이를 위한 여정은 항상 치열했다. 단지 조금 더 숨을 쉬고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을 뿐이었다.


 하루는 동기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대학만 가면 인생이 탄탄대로일 줄 알았어. 그런데 여기서도 또 노력하고 경쟁해야 하는 건 달라지지가 않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참 공감이 갔다. 새로운 고민과 난관은 언제 어디서든 나를 덮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수의사가 된 후로는 고민이 더욱 심화되었다. 학생을 갓 벗어나 공중방역수의사로 복무하는 일상은 말랑말랑하지 않았다. 지인들은 라이센스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며 농담 섞인 위로를 건네지만, 내가 그려왔던 수의사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 순간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수의사로서 뛰어난 무언가를 갈고닦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시작도 전에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이 올까 두려워졌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10년 전이 내 생에 가장 치열한 시기였을까?’

 내 생에 가장 치열한 시기는 지나갔을까, 아니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여전히 물음표인 것을 보면, 다행히 나는 치열하지 않을 준비가 되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오랜 시간, 그 해답을 찾지 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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