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칠한말티즈 Feb 04. 2024

세상과 연애하기

 오랜만에 대학가에서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차를 가져와 술을 마실 수 없는 나를 배려해 준 여자친구 덕분에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를 가기로 했다. 불현듯 머릿속에 나의 학창 시절, 고이 접어둔 추억의 카페가 스쳤다.


 2019년 말, 조용한 카페를 찾고 있던 나에게 특이한 이름의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세상과 연애하기’, 줄여서 ‘세연’이라 불리는 이 카페는 샤로수길 초입에 위치한 북카페다. 차를 시키면 사장님께서는 “두 번 정도 더 우려낼 수 있으니 편하게 말해요.”라는 친절한 멘트와 함께 간단한 과자를 내어 주신다. 지갑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의 입장에서 이 말은 참 따스한 배려였다. 시간제한을 두는 카페도 많은데, 오히려 오래 머물고 가도 부담이 없도록 맞아 주시니 머무는 시간이 편할 수밖에 없었다.


 귀엽게 리뉴얼된 메뉴판을 제외하고는 내부도, 가격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간 물가 상승률이 말이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학생들의 지갑 사정을 고려해 기존의 가격을 고수하고 있는 모양이다. 책은 마음껏 빌려가도 되고, 반납 기한은 일주일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맞아, 이 카페는 돈보다는 정으로, 믿음으로, 그리고 인연으로 운영되는 카페였지.’하며 괜스레 마음이 따스해진다. 


 하지만 이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누군가의 소망, 추억, 때로는 고민을 살포시 놓아둔 한쪽 벽을 바라보면 왜 카페의 이름이 ‘세상과 연애하기’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작은 하루의 조각들을 모아 만들어진 작은 세상이 무엇보다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내가 입학하기도 전인 2013년의 옅어진 향기부터, 최근의 생생한 향기까지, 다양한 삶의 향기가 고소한 차의 향에 뒤섞여 전해진다.


 한창 카페에 자주 올 때는 사장님과 담소도 나누곤 했다. 사장님도 자주 오는 나를 알아보고는 괜히 한 번 더 말을 걸어 주셨고, 더 친한 사이가 될 뻔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가 왔고, 거리 두기가 시행되었다. 나에게도 참 답답한 시기였지만, 사장님은 배로 힘든 시기였을 것이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사장님의 고민과, 아픈 기억의 조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사장님 입장에선 혹시 나도 힘든 시기에 발길을 끊은 매정한 손님이지 않았을까. 


 마지막 방문 때 친구를 데려와서는 다음엔 꼭 여자친구와 오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난다. 4년이 지난 이제야 그 말을 지켰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계산을 하는 내 얼굴을 사장님이 빤히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다. 반가운 마음 뒤로 미안함이 가득해 결국 인사를 드리지는 못했다. 대신 소중한 사랑의 조각 하나로 나의 세상을 아로새겼다. 우리의 하루도 아름다운 향기로 남아, 여러 번 우러나기를 소망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양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