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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말티즈 Feb 11. 2024

바둑방

 내가 어릴 적 우리 집은 전자 제품을 파는 작은 가게를 했다. 인터넷 쇼핑이나 택배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보니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에 와서 이런저런 전자제품을 구매하곤 했다. 손님이 오면 아버지는 잠시 바둑알을 놓아두고는, 물건을 판매하고 곧 돌아와서 한참을 고민하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흐름이 끊겨서 어디에 둘 지 모르겠네...”

 그러면 상대는 기다림이 지루하다는 듯 답했다.

 “바둑 두는 사람 어디 갔나.”


 사실 내가 기억을 할 나이 즈음에는 이미 우리 가게는 바둑방에 가까웠다. 바둑에 일가견이 있는 동네 어른들은 모두 바둑을 두러 우리 집에 들렀다. 삼삼오오 모여 바둑판에 둘러앉아 훈수를 두는 일이, 그 시절 시골 어른들의 오락이었던 것이다. 실내를 뽀얗게 채운 담배 연기가 싫어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던 어린아이는, 이따금 그때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 시절 그 공간에는,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가장 건강했던 모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바둑 경기가 끝나면 어른들은 형님, 동생 하며 커피를 나눠 마셨다. 대화는 믹스 커피의 향을 타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번졌다. 바둑의 승패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아버지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수다에 빠져 더 이상 바둑판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즈음이 되면 나는 슬쩍 얼굴을 비추고 인사를 드렸다. 늦둥이인 나는 어른들의 애정을 독차지했고, 단골 어른들은 저마다의 별명을 얻었다. 매번 박카스를 주시던 박카스 아저씨, 앞이 안 보이는 대신 예리한 손 끝으로 배탈이 난 내 배를 만져 주시던 봉사 아저씨, 아빠의 트럭이 고장 나면 손 봐주시던 렉카 아저씨. 이제는 비어 버린 바둑방을 바라볼 때면 왜 그리도 정겨움이 느껴지는지...


 과거를 낭만으로 포장하는 걸 보면, 나도 나이를 먹는가 싶다. 정성스레 떡국을 내어오신 어머니께 웃으며 농을 던진다.

 “아이, 떡국 먹으면 또 한 살 더 먹는데...”

 올해도 비어 버린 바둑방에, 빈 그릇이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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