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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말티즈 Mar 10. 2024

배치

 갑작스러운 배치지 선정 소식에 혼란이 빚어졌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훈련소가 끝난 후 배치지 결정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했던 터라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일엔 세부 배치지까지는 결정하지 않고 지역만 먼저 결정하였는데, 가장 공평한 방법으로 번호표 뽑기를 진행하게 되었다.


 나는 150명 중 50번대를 뽑았다. 나쁘지 않은 번호였지만 우리 기수는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의 티오가 적었기에 내 앞 순번들이 지역을 뽑을 때마다 입이 바싹 말랐다. 경기도는 10번대에서 마감되었고, 티오가 적었던 경남과 제주도도 금방 마감되었다. 간혹 비인기 지역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환호를 받았고, 인기 지역이 선택되면 아쉬움의 탄성이 들려왔다. 기다리던 나의 순번이 왔고, 나는 충남을 선택했다.


 아무런 정보를 수집하지 못한 상황이라 내가 배치지 선정에서 최우선으로 두었던 것은 수도권과의 거리였다. 여자친구가 수도권에 있다 보니 주말에라도 만날 시간을 보장받고 싶었던 것이다. 너무나 좋은 사람을 만나 다툼 한 번 없이 지내왔지만, 몸이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혹여나 서로의 마음도 멀어질까 큰 걱정이 되었다. 또한 친지가 없는 타지에서 3년을 홀로 보내는 것이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 분명했다. 그나마 한 번씩 축구라도 하러 학교로 올라갈 수 있는 거리가 중요했다. 아무래도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기존의 인연들만큼 가까워질 수 없다.


 급여나 업무에 관련된 부분은 이미 복무 중인 선배가 없다면 정보를 얻기 쉽지 않다. 3년이 지나서야 하는 말이지만, 선배들의 말을 참고하는 것은 좋으나, 맹신하는 것은 좋지 않다. 한두 사람의 의견만으로 전체를 평가하는 일은 항상 위험하기 때문이다. 배치지가 매우 다양하고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잘 맞을 수도,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지역 혹은 기관마다 수당이 달라 다른 동기와 나의 급여가 상당히 차이나는 걸 보며 심각한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더군다나 공무원의 특성상 인사이동이 빈번하다. 인사이동으로 빌런이 등장하는 순간 그 기관의 평가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생각보다 세상에 빌런은 많고, 그런 의미에서 나름 복 받은 복무를 했던 듯싶다.


 어찌 되었건 아무도 공중방역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사람은 없다. 현역 복무와 비교했을 때 장단점이 뚜렷하고 그 장점을 높게 평가했기에 선택을 했을 뿐, 모두가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공중방역수의사를 3년간의 휴식기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막내의 포지션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스트레스받을 일이 많고 업무량이 적은 것도 아니다. 다만 임상수의사에 비해 업무의 강도가 낮고 개인 시간이 많으며, 책임 소재가 적은 것은 확실하다. 수의사의 일생에서 비수의학적인 무언가를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임에는 틀림없다. 


 3년의 공중방역수의사 생활의 첫걸음이 뽑기 한 장으로 시작된다는 것이 참 허탈했던 것 같다. 배치지를 고르는 일은 정말 천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공중방역수의사들이 원하지 않는 지역에서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스스로가 인생을 윤택하게 채워 나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는가. 마무리를 앞두고 보니, 참 소중하고 아쉬운 3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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