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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말티즈 Apr 14. 2024

적응

 말년 휴가를 마치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지소를 찾았다. 올해는 이례적으로 신입생과 졸업생의 복무 기간이 3일 정도 겹쳤다. 덕분에 새로 배정된 신입 공중방역수의사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쭈뼛쭈뼛한 후배들의 모습을 보니 3년 전 나의 모습이 아득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란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살아가며 겪는 수많은 처음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이 첫 사회생활이었다. 학창 시절의 작은 사회 속에서 산전수전을 많이 겪어왔지만 상하관계가 뚜렷하고 관계를 쉽게 끊어낼 수도 없는 직장 세계에서의 적응은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 걸음씩 나아갈수록 사회는 보다 높은 난이도로 우리를 기다리는 던전 같다는 생각이 이따금 든다.


 첫 출근일에 동물위생시험소로 배정받은 신규들은 짧은 머리가 부끄러워 모자를 쓰고 본소에 모였다. 아직 차가 없었기 때문에 근처의 허름한 모텔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시피 한 나는 퀭한 얼굴로 방역업무 종사명령서를 받았다. 이후에 본 근무기관에서 우리를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수의사님의 차를 타고 지소로 향했다.


 수의사님은 1시간 내내 공중방역수의사의 마음가짐에 대해 설교하며 차를 달렸다. 봄이 완연한 차 안이 어찌나 숨 막히게 느껴졌던지. 일을 하지 않으려고 뺀질거리던 공중방역수의사의 이야기를 지나 직원들과 사이가 틀어졌던 사례를 통과할 때 즈음, 말랑했던 카시트는 가시방석이 되어 있었다. 우리의 적응을 도와주기 위해서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기강을 잡으려는 시도였는지 그분의 속마음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당시의 우리에게는 그저 부담을 주는 말들이었고, 돌아보면 거리감만 만들어낸 불필요한 시간이었다.


 지소에 도착한 후에는 전 직원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매년 있는 일이라 직원분들은 익숙한 눈치였지만 처음 겪는 우리는 다소 경직되어 있었다. 특히나 충청도 사투리를 거의 접한 적이 없었던 터라 대화의 맥락을 따라가지 못할 때는 망망대해를 홀로 표류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부서를 배정받고 낙후된 시험소를 한 바퀴 돌며 걱정이 앞섰다.

 ‘잘할 수 있을까…?’


 이후로도 한동안 적응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잔실수에 대한 걱정부터 시작해서 회식은 빠져도 되는지, 칼퇴는 해도 되는 건지. 사소한 모든 것들이 걱정이 되었고 먼저 나서서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눈치만 보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곧 처음이라서 어려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업무상 모르는 것들을 물어보면 선배들은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내 업무만 잘 해낸다면 크게 터치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과는 거리를 두면 그만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이유도, 결코 남의 일을 떠맡을 필요도 없다. 내가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기만 하면 모두들 나를 존중해 주었다.


 결국 적응에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적응을 마치고 한 단계 성장한 후에는 오히려 학생 때보다 더욱 여유로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으레 걱정으로 막막해하기보다 부딪히면서 하나 둘 해결해 나가면 항상 인생은 걱정한 만큼 꼬이지 않는 법이리라.


 다른 단점들을 차치하고 사회생활의 측면에서만 보면, 앞으로 더욱 바빠질 임상 수의사로의 삶을 앞두고 공중방역수의사로 조깅을 하고 들어가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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