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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득찬 May 19. 2019

세상에 가만히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오늘도 엄마는 반성 중


출산 직전까지 회사를 다니다 아기를 낳고 온전히 아기와 함께하는 일이 나의 일상이 된 지 1년이 지났다. 갓 돌을 지난 아기는 정말 신기하게 돌을 지나면서 부쩍 성장한 느낌이다. 가만히 누워서 허공에 팔을 휘적휘적하던 아기가 이제는 앙금앙금 걸어 다니고, 풀썩 넘어져도 또 일어나 걷고 또 걸으며 집 안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걸으면서 만나는 모든 것들은 작은 손으로, 발로 만지고 또 만지고 살피느라 바쁘다.


 “걷기만 하면 얼마나 편할까요?”  아기가 신생아 시절을 지날 때 즈음  한 나의 말에 혀를 끌끌 차던 육아 선배들의 말들과 ‘앞으로 네게 닥칠 고난을 미리 위로할게’ 하는 듯한 그들의 눈빛이 이제야 이해가 가는 요즘이다. 정말이지 아기는 잠을 자는 시간 외에 단 1분 1초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가만히 좀 있어 봐.”  


“가만히 좀 있어 봐!” 


“가만히 좀 있어 봐~”

그러다 보니 요즘 아기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가만히 좀 있어 보라는 것이 되어버렸다. 옷을 입히고 벗길 때, 밥을 먹일 때, 세수시킬 때, 기저귀를 갈 때, 좀처럼 가만히 있지 않는 아기에게 어떤 때는 다정하게, 어떤 때는 호통치듯, 또 어떤 때는 애원하듯 매일매일 저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여느 때처럼 아기에게 “가만히 좀 있어 봐.”라고 말한 뒤, 새삼 이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아기가 온전히 내 말을 이해한다면 이 말이 얼마나 이해가 가지 않고, 서운한 말일지 말이다.

아기가 또박또박 말을 할 줄 안다면 “세상에 가만히 있는 게 어디 있어요?”라고 되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기가 매일 보는 나무, 하늘, 꽃, 자동차, 사람들. 그 모든 것들 어느 것 하나 가만히 있지 않고, 매일매일 변하고 있는데 말이다. 매일 아기에게 저것들을 보라며, 움직이는 것들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 주려고 엄마로서 애써왔으면서, 정작 아기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 것이 새삼 너무나 미안했다.


일 년 조금 넘게 아기를 키우면서 가장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아기가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제일이라는 어른들의 말을 몸으로 마음으로 완전히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아기에게 딱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세상 곳곳을 누볐음’ 하는 점이다. 분명 이런 마음을 가득 안고 살고 있는데, 아기에게 매일매일 ‘가만히 좀 있어 봐’라고 말 한 나 자신을 꾸짖고, 또 꾸짖었다.


아기를 키우는 일은, 이렇게 반성할 일이 많아지는 것인가 보다. 후회스러운 순간들이 있어도, 나로만 살 때는 애써 무시했는데, 아기를 키우니 그게 어렵다. 후회스러운 순간들을 곱씹고 또 곱씹어 반성하게 된다.

엄마가 미안해. 다시 잘해보자, 아가야.


우리 아가, 가만히 있지 말길. 세상 많은 것들을 보고, 만지고, 느끼길.

다양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몸으로 나아가 모든 것들을 만나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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